구글플러스 이야기

(예전에 비행기 안에서 썼던 긴 글이 잠자고 있어서, 아까운 마음에 업데이트 & 포스팅).

지금은 회사를 나와서 스타트업 준비를 하고 있지만, 불과 두세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구글+ 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던 블로거팀은 구글+의 핵심적인 기능을 개발한 팀은 아니었지만, 구글+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될때 비교적 소수의 인원이 꾸려질 때부터 프로젝트로 편입이 되는 바람에 나는 구글+ 프로젝트를 아주 초기부터 보아올 수 있었다.

아직 구글+가 궁극적으로 성공할 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곁에서 본 프로젝트의 시작과 진행 과정은 흥미진진함 그 자체였다. 몇가지 생각나는 일화들이 있다.

1. 어스퀘이크

2010년 SXSW에 참석하고 나서 구글 본사 46번 건물로 출근을 했다. 아직은 미국 본사로 옮기기 전이라 출장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평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내가 임시로 쓰던 자리에 갔는데 누군가가 내 의자를 쓰고 다른 자리에 놓았는지 다른 사람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냥 혼잣말로 누군가 내 의자를 바꾸어 놓았다고 중얼거렸더니, 그걸 들은 엔지니어링 매니저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지금 그거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That should be the least of your worries”)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아침부터 공기가 무거웠던 이유는 시니어 VP (부사장) 중 한명인 얼스 회엘즐 (이분 이름 한글로 참 쓰기 힘들다. 실제로는 “우얼즈”에 가깝게 발음함) 의 이메일 때문이었다. 장문의 이메일은 구글의 소셜 비즈니스에 대한 것이었다. 구글이 소셜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게 아니었으므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내용은 조직 개편에 대한 것이었다. 갑자기 소셜 분야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차출”되어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프로젝트명은 에머랄드 씨 (Emerald Sea) 였다.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각 팀에서 두세명씩 차출되어 나가기 시작했고 우리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갑자기 무엇을 만들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백명이 넘는 사람들로 팀이 꾸려진 것.

사람들은 여러가지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구글러들은 정말 똑똑한 사람들인 동시에, 종종 가장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무조건 사람부터 넣느냐고 일이 되느냐, 프로덕트에 대한 비전 수립이 먼저 되고 그다음에 코딩에 들어가야지 엔지니어들부터 먼저 모아놓는다고 일이 되느냐 등등. 이때 하도 조직이 혼란기를 겼었던 지라, 사람들이 이것의 시발점이 된 얼스의 이메일을 가르켜 "지진(earthquake)"와 유사한 단어를 만들어내어 “Ursquake” 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메일을 쓴 사람이 얼스였을 뿐이지 이 모든 변화가 얼스라는 한명의 부사장이 시작하고 주도한 것은 아니었고 창업자 레벨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래리 페이지는 지금도 구글+를 구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중 하나로 여기고 있고,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 버즈 시절부터 직접 드라이브하면서 정말 큰 관심을 보여 왔었다. 그당시 46번 건물에 가면 저녁 늦은 시간에도 창업자들과 임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광경을 거의 매일 볼수 있었다. 재산만 수조원 이상에 이르는 구글의 창업자들과 임원들이 십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치열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가히 미스테리중 하나.

사람만 몰아넣어서 일이 되냐고 할때마다 돌아왔던 답변은, 그게 구글의 전통적인 방법이라는 거였다. 똑똑한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그들에게 정말 큰 챌런지를 부여한 다음, 그들이 그 챌린지를 극복하도록 하는 거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 말은 반 이상 맞는 셈이 되었다. 기억컨대 지금 구글+ 서비스에서 돌아가고 있는 핵심적인 뼈대 기능은 놀랍게도 이미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나서 100일 안에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버그는 많았지만). 그리고 역시 구글의 전통적인 방법대로 내부 테스트 (dogfood) 를 통해서 피드백을 아주 일찍부터 받기 시작했다. 구글+팀은 마치 스타트업처럼 움직였고, 구글의 다른 팀과는 사뭇 다르게, 매우 빨리 운영되었다.

똑똑한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큰 문제를 안겨주고 그들이 그 구덩이에서 헤어나오도록 하는건, 참 잔인한 방법이지만 때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2. 포멀 프라이데이 (formal Friday)

구글+의 정식 서비스 론칭이 다가올수록 개발팀은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다. 론치 일정을 앞두고 구글+팀은 포멀 프라이데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서비스 출시일 전까지 금요일마다 팀의 주요 멤버들은 양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제도였다. 잘 알려진대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매우 캐주얼한 복장을 입는것이 관례이고 따라서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것은 특수한 일이 아니면 의아 내지는 심지어 민망한 (embarassing) 일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포멀 프라이데이는 금요일마다 양복을 입는 것이 민망하게 느껴져서라도 서비스 출시 기일을 어기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 내지는 압력(?)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취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포멀 프라이데이에서도 유머감각을 잊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서 배우는 점 중의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 이에 반해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종종 너무 절박하게 생각하고, 표정이 굳어있을 때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포멀 프라이데이를 이용해서 턱시도, 인도 전통의상 (포멀한 옷이라고 했지 굳이 양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또는 영화 "마스크"에서 짐 캐리가 입고나왔던 샛노란 양복을 굳이 사서 입고 오기도 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나중에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추억거리로 자리잡았음은 물론이다.

조직의 팀웍은 해당 조직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유하기 힘든 독특한 (그리고 때로는 유머있는) 문화를 공유할 때 더욱더 강화되는것 같다.

3. ESPS, All hands demo

구글+팀은 다른 구글 팀과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거의 모든 결정이 탑에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탑다운 컬쳐였다. 마치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가 거의 모든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렸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장단점이 있지만, 대체로 이런 구조였기 때문에 불가능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서비스를 론치할 수 있었다는 평이 더 많았다.

대신 결정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 있으면 ESPS (Emerald Sea Product Strategy) 라고 불리는 미팅에 아젠다를 들고 가면 그 미팅에서 대부분 5분내에 결정이 나곤 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지는 만큼 그 미팅의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인텐시브했다. 사람들이 말을 어찌나 속사포처럼 빨리 해대는지, 마치 기관총으로 말을 서로 쏘아대는 듯했다. 말을 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자신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된 논리와 이유를 대야지 (그것도 대략 0.2초 안에), 그렇지 않으면 바로 박살이 나는 분위기. 서로 인격이 상하는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스스로 배틀에 졌다는 자괴감과 더불어 자기 뒤에 있는 팀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차원에서의 "박살"인 것이다.

ESPS가 일부의 사람들만 참여하는 닫힌 회의라면 All hands demo는 수백명의 팀들이 참여하는 열린 미팅이었다. 이 미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개발중인 기능의 데모였다. 대략 5-10개정도 팀들이 출시가 임박한 기능들을 5분 이내로 데모하는 것인데, 멋진 기능을 데모할 때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칭찬하고 같이 흥분하고 박수와 환성을 보냈다. 반면 의도치 않게 버그가 날때면 진행자들의 위트와 더불어 청중을 한번 웃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지금도 가장 그리운 구글의 문화중 하나는 이런 긱(geek)들의 데모 문화다. 끝도없이 전략과 계획의 논의를 펼치는 회의는 지겹고 따분하고 재미없다. 기술 중심의 회사라면 거의 모든 회의에 있어서 회의 = 데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4. 빅 군도트라

구글+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구글의 소셜 시대는 빅 이전과 빅 이후로 나뉜다는 말도 있다. 구글+ 팀을 이끌고 있는 수석부사장 (예를 들어 삼성으로 치면 계열사 사장쯤에 해당) 빅 건도트라에 대해서는 많은 한국분들이 모르고 있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우선 굉장한 쇼맨십을 갖춘 사람이다.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가수들과 래퍼들의 전화목록이 저장되어 있고 그들과 종종 통화를 주고받는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도 미니밴이 아닌 아우디 R8 스파이더 오픈카를 타고 가며, 또한 미 전역에 방송된 메르세데스 벤츠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총기 소지자임을 구글+ 포스트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마초적 성향을 가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매우 컬러풀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다.

인도 출신이면서도 미국의 주류사회를 휘집고 다니는 이 사람을 보면서 왜 한국사람들중에는 저런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 봤었다. 한중일 아시안들은 비교적 모범적이고 말썽 안 일으키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불평 없이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대부분이 아닐까. 좀더 (좋은 의미로) 미국 주류사회에서 사고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건 아닌지.

하지만 빅에 대해서 가장 경이로운 점은 말을 너무도 잘한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말하는 것만 따로 연습하나 싶을 정도. 그 똑똑하고 자기주장 강한 구글러들도 빅이 10분만 대중 스피치를 하고 나면 다들 반 좀비상태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기업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말솜씨가 저정도는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다.

일화 하나만 소개하면, 구글+가 공식적으로 오픈하기 마지막 주 전체 회의때 일이었다. 데모 세션이 끝나고 빅이 드디어 사람들 앞에 섰다. 우린 모두 그가 이번주에는 도대체 어떤 10분 메시지로 그의 군사들을 또다시 반 좀비로 만들지 궁금해 했고, 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반적인 메시지 끝에 마지막으로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면서 말을 마무리했다. 오늘아침 구글러중 한명이 자기를 찾아와서 할아버지때부터 집안에 내려오던, 미국 내전(civil war) 때 발행된 주화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 주화에는 바람에 맞서는 황소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곧 용기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 주화를 지니고 바람에 맞서서 용기를 가져라, 구글+의 론치에 행운을 빈다, 뭐 이런 어찌보면 정말 별거아닌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술과도 같은 그의 화법을 통해서 전달된 그 이야기는 결국 방안에 있던 한두명의 뺨에 눈물을 흐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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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는 잘될까? 사실 이제 구글+ 팀도 아니고 해서 구글+가 궁극적으로 잘 될건지 아닐지에 대해서 예전만큼 관심을 갖고 있진 않다. 솔직히 고백컨대 회사를 나오고 나자마자부터 개인적으로는 구글+를 많이 안쓰게 된다. 친한 사람들이 99% 페이스북에 있고, 동일한 소셜 그래프가 구글+로 그대로 전이 내지는 복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것 같다. 페이스북은 싫어도 쓰게 되는데 구글+는 그렇지 않다는게 가장 큰 차이인 듯.

구글+가 가진 가장 큰 (어쩌면 유일한?) 장점은 구글이라는 서비스를 깔고 있다는 것. 따라서 구글+는 구글 전체에 소셜 기능을 입혀주는 레이어 내지는 파운데이션이 되어야 하고 한창 그러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마치 마이크로소프트와 스카이프의 관계일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스카이프를 비싼 가격에 인수한 것은 스카이프의 기능이 다른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이베이도 그런 비슷한 비전을 가졌을 테지만 (바이어와 셀러들이 스카이프로 통화하면서 가격 흥정과 소비자 상담을 하는 그림?) 결국 스카이프는 이베이에 녹아들어가지 못했고 따라서 손해를 보면서 매각되었던 전례가 있다. 아무튼 구글+도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는 구글의 각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융합되어야 하며, 구글+팀은 이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큰 변화가 없는한 구글의 모든 서비스에 구글+가 녹아들어갈 것임은 거의 100% 확실하다고 보면 될듯.

소프트웨어와 지렛대 효과

부자들은 부동산이나 펀드를 통해 돈이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게 하는 반면,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해서 소위 "hand to mouth"로 그달그달 먹고 산다. 결국 투입 노력대비 수확 (ROI) 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렛대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

세상에 족적을 남기는 방법에도 이런 지렛대 효과가 있는 듯하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는 컨텐츠의 라이프사이클이 너무도 짧기에, 계속적으로 열심히 컨텐츠를 생산해 내지 않으면 인기가 유지되지 않는 구조다. 마치 계속 물을 퍼내야 가라앉지 않는 구멍난 배처럼. 반면 블로그는 이보다 라이프사이클이 좀더 긴듯 해서, 몇년전에 썼던 좋은 글들이 아직도 꾸준한 트래픽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책은 이보다 더 라이프사이클이 길다. Good to Great 같은 책은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러중 하나.

하지만 더 큰 지렛대 효과가 있는게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다. 트위터의 초기 버전, 카카오톡의 초기 버전을 만드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아마 제대로 된 블로그 하나 시작하고 인기를 끌게끔 하는것에 비해서 그렇게 큰 노력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소프트웨어들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다.

그래서 동일한 양의 노력을 투입할 거라면 나는 트위터보다 블로그를, 블로그보다 세상 사람들이 널리 쓸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만들 것을 추천한다. 거창한 이유는 없고 위에서 말한 지렛대 효과 때문이다. 

beLaunch 컨퍼런스

beLaunch (비 론치) 컨퍼런스가 곧 열린다.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가 된다. 나도 초대를 받았거니와, 개인적으로 너무도 좋아하고 열정을 보증 가능한 분들이 진행하는 컨퍼런스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 서울에 있었을 때 컨퍼런스 오거나이징을 몇번 해본 적이 있기에 이게 얼마나 힘들지만 값지고 보람있는 일인지 알고 있다. 모쪼록 행사를 기획하는 분들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행사를 치러낼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낸다.

컨퍼런스를 하면서 스피커의 자질에 대해서 옆에서 관찰하고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스피커들은 컨퍼런스에 초대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세션을 위해서 실제로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스피커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이 기존에 했던 이야기들을 재활용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번째 부류의 스피커들을 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 두가지 세션에 서게 되는데 (Like 부탁!) 하나는 UX (유저 익스피리언스)와 서비스 개발에 대한 세션이고, 또 하나는 실리콘밸리의 창업과 인큐베이션에 대한 세션이다. 두 세션 모두, 너무나도 일천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나눌수 있는 기회가 될것 같아서 좋다.

사실 실제 컨퍼런스 패널에서 내게 말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시간은 얼마 안될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짧은 시간에 못다한 이야기들이 생길까봐, 그리고 세션을 미리 준비하는 차원에서, 시간이 나면 종종 블로그에 글을 몇개 올려볼 생각이다.

beLaunch 컨퍼런스는 6월 13, 14일 양일간 양재동 aT 센터에서 열린다. 

크로스핏 (Cross-fit) 열풍

얼마전에 봤던 리복 광고 덕분에 Cross-fit이라는 운동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방영된 TV광고 배경에 한국어가 나오기에 당연히 눈길이 가게 마련. 이 광고 덕분에 멋진 한국인 남자 모델 이근형씨라는 분도 알게 되었다.



"뒷이야기" 비디오를 보면 전세계 광고를 제작하면서 스페인, 러시아, 미국과 함께 한국에서 촬영을 한 모양이다. 왜 4개국중의 하나로 한국을 골랐을까? 그냥 랜덤한 초이스? 아니면 리복에게 있어서 한국이 전략적 시장? (참고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리복은 독일 아디다스 그룹의 브랜드이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주목할 정도로 열풍을 끌고있는 크로스핏은 과연 뭘까? crossfit.com을 참조하면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운동이라는 게 핵심 키워드인 듯하다. 어떤 특정한 운동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운동을 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기본적이고 전반적인 체력을 길러주는게 목적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운동 프로그램을 보면 매우 단순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앉았다 일어나기, 무거운 모래자루같은것 들고 뛰기, 물구나무 서서 팔굽혀펴기 하기 등등, 쉽게 말해 "얼차레"라고 보면 될정도. 역시 오래전부터 오리걸음등 각종 강도높은 얼차레 프로그램을 개발해온 우리나라가 IT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앞서있다고 보면 되는걸까. 이처럼 간단한 프로그램이지만 실제로 크로스핏 코스를 거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제대로 하면 정말 (실제로) 토할 정도로 힘든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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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만 해도 크로스핏은 일부 도시 화이트칼라들에 의해 형성된 마이너 문화였다. 낮에는 점잖게 지식노동자로 일하다가 밤에는 지하실에 있는 짐에서 소위 "gym rat"이 되어서 격렬한 운동을 즐기는 것이 그들을 크로스핏으로 이끄는 매력이었던 것. 게다가 크로스핏이 그룹 운동이기때문에 같이 워크아웃을 하는 사람들끼리 바깥에서도 친해질수 있다는게 또다른 장점이기도 했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일부 백인들의 여피문화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었던 크로스핏은 최근들어 리복등 대기업들이 가세하면서 전국적으로 소개가 되고있고, 관련 스포츠용품 매출도 급격히 증가중이다. 이 과정에서 물론 얼리 어답터들은 자기들만의 소수문화가 메이저 문화로 탈바꿈하는 것에 대해 그리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듯.

역시 비즈니스 기회는 문화의 트렌드에 올라타거나, 나아가 그러한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창출될 수 있다. 지금은 모든 대중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따라서 큰 비즈니스로 성장한) 와인같은 분야도, 그 시작을 살펴보면 일부의 컬트들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던 것을 볼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문화를 시작하는 발화점은 늘 소수의 앞선 사람들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듯, 미래는 이미 여기에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크로스핏을 즐기던 얼리어답터들은 이제 대중을 피해서 어디로 갈까? 

인터넷 뉴스사이트 광고

이메일로 버디버디 서비스 종료 소식이 와서 (12년간 지속되온 서비스가 문을 닫는다니, 참 안타까운 소식이라고 생각되었다), 뉴스 검색을 통해서 몇가지 뉴스를 찾아보았다. 검색 결과중에 상위에 랭크된 두개 사이트를 방문했더니, 대략 이런 사이트가 펼쳐졌다.






우리나라 뉴스 사이트가 자극적 광고와 낚시성 기사제목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두곳 다 좀 너무하다 싶어서 캡처를 떠봤다. 첫번째 사이트의 경우 메인 컨텐츠인 기사 내용 자체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광고를 꺼야만 그제서야 기사가 보인다. 광고를 끄려다가 실수로 클릭을 하는게 아마 click-through 중에서 상당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낚시나 실수 클릭을 통한 돈벌기를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해적 사이트도 아니고, 엄연히 검색 결과 상위에 랭크되는 뉴스 미디어의 사이트인데 이정도라니.

언론사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내가 IT쪽 뉴스를 접하기 위해서 자주 가는 사이트인 Techmeme이나 Hacker News는 너무도 단순한 UI를 가지고 있기에 너무도 비교가 된다.





깔끔하게 컨텐츠 위주로 뉴스를 전달하는 사이트, 자꾸 뭘 설치하라고 수십번씩 경고가 뜨지 않는 뱅킹 사이트.. 우리나라 인터넷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은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들인데도, 그런 불만과 니즈가 여전히 만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Startup Genome Project

스타트업 지놈 프로젝트 (startup genome project) 는 스타트업의 성공 요인이 무엇일지를 최대한 분석해 보기 위한 프로젝트다. 물론 스타트업의 성공은 과학이 아닌 예술, 예측이 아닌 운의 영역에 더 가까울 수 있겠지만.

프로젝트 사이트에서는 몇가지 흥미로운 관찰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테면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술 중심의 회사를 창업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든지, 실리콘 밸리 창업자들은 뉴욕의 창업자들에 비해 게임이나 소셜 네트워크, 인프라스트럭쳐쪽 창업을 할 확률이 높다든지,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점들이 조사를 통해서 하나의 패턴으로 파악된 모양이다. 이 외에도 몇가지 재미있는 발견들은 이 사이트를 참고.

역시 가장 큰 규모의 창업 생태계를 갖춘 곳은 실리콘밸리이고, 그 다음이 역시 미국의 뉴욕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창업 열기가 뜨거운 상위 25개 도시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은데, 서울은 그 순위에 포함되지 않았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폴이 가장 상위인 7위에 랭크되었다.


  1. Silicon Valley (San Francisco, Palo Alto, San Jose, Oakland)
  2. New York City
  3. London
  4. Toronto
  5. Tel Aviv
  6. Los Angeles
  7. Singapore
  8. Sao Paulo
  9. Bangalore
  10. Moscow

"자찾사", 창조적 솔로

자찾사 = 자기의 일을 찾아나선 사람들? 이건 내가 지금 만들어낸 단어다 :)

이번에 사람들을 좀 만나고 있다. 그중 몇명은 좋은 직장의 기회를 버리고 잠시 한숨 돌리면서 쉬기도 하고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하려는 사람들이다. 일종의 슬로우 워크 무브먼트라고 할까?

사람은 기본적으로 매일 하루 7-8시간씩 자야 한다. 뛰어난 예술가들과 그보다 못한 예술가의 차이가 수면 시간의 차이라는 글도 있다. 저녁 식탁에 가족들과 식탁에서 담소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나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배경으로 가족들 손 붙잡고 두런두런 동네를 걸으며 이야기도 하는 삶, 그게 우리가 살아야 할 참 모습이다. 한국의 직장인들? 1년에 하루정도 그런 날을 가지면 행복할 거다.

성실보다는 창조성이 중요한 일일수록 비워야 채워지고 쉬어야 의욕이 생긴다. 산타크루즈 해변에 사는 유명한 화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주로 하는 일이 해변을 산책하는 일이라는 것. 그러다가 영감(inspiration)이 자신을 찾아오면 미친듯이 몇시간이고 작품활동에 몰입한다고 한다. 그럴때 걸작품이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불규칙한 싸이클과 리듬을 갖춘 동물이기에 자기 내면의 리듬을 따라가는게 가장 자연스러운 삶일테다.

반면 조직에 속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리듬대로 일하는게 아니라 꽉 짜여진 스케줄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마련이다. 각종 위클리 미팅들만 따라다녀도 실제로 일할 시간조차 없고, 그러다 보면 피곤해서 자고싶은 밤 외에는 "진짜 일"을 할수 있는 시간이 없는 삶을 살기 일쑤다.

자갈 하나 들기는 어렵지 않지만, 들기에도 버거운 등짐 지고 가는 사람에게 자갈 하나 올려놓으면 그것이 폭발 일보직전의 짜증으로 이어질 수 있듯, 조직에서 부여된 꽉 짜여진 스케줄을 사는 사람에게는 아이 데리고 소아과에 가는 따위의 일조차도 너무나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그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일텐데.) 혹자는 현대인의 삶을 12:00 에서 계속 깜박거리는 전자제품의 시계를 수정할 시간과 정신적 여유조차 없는 삶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조직을 어떻게 쉽게 뛰쳐나올 수 있나.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하고, 좋은 직장 다닌다고 주변에 이야기해놓은 것도 있으니, 내 아이덴티티에서 이 회사가 빠진다고 생각하면 덜컥 불안감이 들게 마련. 평소엔 잘 이용도 안하던 각종 복지혜택도 갑자기 생각날  수 있겠고.

회전목마가 빨리 돌수록 뛰쳐나오기 쉽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빠른 회전은 필연적으로 원심력까지 유발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조직생활이 벅찰수록 다음 프로모션을 바라보며 더 일의 중심으로 향하기도 한다. 그렇게 올라가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고 나아지리라 생각하지만, 결과는 안그래도 헥헥거리면서 런닝머신에서 뛰고 있는데 트레이너가 와서 속도를 높이는 것과 비슷한 결과. 이렇게 내일이 오늘 되고, 오늘이 어제 되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덧 10년 세월이 금새 지나가 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조직이 나쁜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아는 뛰어난 사람들 대부분 조직에 속해서 일한 사람들이다. 나는 구글에서 뛰어난 사람들을 워낙 많이 만나서, 스타트업의 정의를 확 넓히게 되었다. 스타트업이란 대기업이든 벤처든 상관없이 세상의 문제를 풀고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재미있고 신나게 일하는 신생 조직이다. 애플에서 아이튠즈를 만든 사람들의 인터뷰에는 매일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역사상 최고의 스타트업중 하나에서 일한 셈이다.

하지만 만일 본인이 "창조적 솔로" 스타일이라면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화가처럼 다소 느리게 걷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기가 하고 싶은 때에 하고, 내면의 사이클과 리듬에 귀기울여가며 살 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규정지을 수 있는 걸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무튼 창조적 솔로의 길을 택한 사람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른건 몰라도, 한국처럼 먹고살기 빠듯하고 주변 눈을 의식하는 사회에서 조직을 뛰쳐나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한 결정을 한 용기에는 무조건 박수가 나온다.

한가지, 이 변화는 비가역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창조적 솔로의 길로 접어선 사람이 조직생활로 다시 돌아가기란 거의 장담하건대 쉽지 않을 것이다. So before taking the pill, you should know what you're getting yourself into. :)

농부와 사냥꾼


세스 고딘이 말했듯,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농부와 사냥꾼.

농부는 주어진 스케줄에 맞추어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게으른 농부란 있을 수 없다. 씨앗을 뿌려야 할 시기에 자칫 게으르기라도 하면 가을에 수확할 거리가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농부는 자연스레 할 일의 목록을 만들고 성실히 이루어 가는 일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반면 사냥꾼은 할 일의 목록이란것 자체가 있기 힘들다. 먹잇감이 언제 나타날지는 사냥꾼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사냥꾼의 대부분의 시간은 기회를 포착하면서 기다리는데 쓰인다. 남들이 보기에는 게을리 노는 시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먹잇감이 시야 범위에 들어오는 순간, 사냥꾼은 그때까지 축적했던 모든 힘을 한꺼번에 쏟아서 기회를 포착하고야 만다.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아드레날린 러시를 경험하는 삶이다.

세상의 변화의 폭과 속도가 높아질수록, 그러한 변화가 주는 수많은 기회들 중에서 나는 과연 어떤 녀석을 움켜잡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그것은 농부의 삶보다는 사냥꾼의 삶에 더 가깝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할일의 목록을 지워나가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느낀다.

삼성이라는 이름의 전차

얼마전 이코노미스트에 난 한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가 얼마나 대단한 회사인지 알 수 있다. 일본 5대 전자회사의 시가총액을 다 합해 봐도 $60-70 billion, 즉 70-80조원수준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 한개 회사의 시가총액은 19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삼성은 국내의 LG전자에 비해서도 시가총액이 13배정도 앞서고 있다. 시장에서는 라이벌 관계로 여겨지지만, 기업가치로 보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앞서고 있는 셈이다. 애플이 충분히 견제할 만하다.

그러고 보면 현대자동차도 GM에 비해 시가총액이 앞서는 세계 5위 수준의 회사고, 포스코는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보다 시가총액 및 경쟁력에서 앞서는 세계 1위 회사다. 이토록 작은, 게다가 제로에서 시작한지 이제 한 30-40년밖에 안 되는 나라에 이처럼 전 세계에서 선전하고 있는 쟁쟁한 회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이제 재벌계열사가 아닌 회사들 중에서도 이런 회사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프로덕트 매니저 (PM) 의 자질 - 2

(링크: 프로덕트 매니저 (PM) 의 자질 - 1)

방 안에서 가장 많이 알고있는 사람 

프로덕트 매니저는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둘러싼 모든 것들 -- 시장, 경쟁환경, 트렌드, 기술적인 부분들 -- 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식 사회에서 리더는 결국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직급이 아무리 높더라도 회의중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보다는, 직급이 낮더라도 해당 분야를 너무 잘 알고 있고 따라서 그에 기반해서 정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에게로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그런 리더가 되어야 한다. 흔히 리더십은 비전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비전은 자다가 또는 샤워하다가 갑자기 나오는게 아니라,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조직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따라서 왠만큼 좋은 회사에서는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 있게 마련이다.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당연히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최고라는 확신이 강하고, 그러다 보면 방안에 모아놓은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주장을 펼치며 일이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로 조직을 구성할 수도 없는 입장인 것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자기보다 훨씬 더 똑똑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로 하여금 직접 일까지 하게끔 만들어야 되는 사람이다. 따라서 어설프게 내가 프로덕트 매니저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소위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다. 따라서 정확한 팩트와 데이터에 기반해서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가끔 프로덕트 매니저는 법정에 서는 변호사와 같기도 하다고 느껴진다.

나도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할 때는 너무도 당연한 기능인데 그걸 넣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팀을 설득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때 그냥 “아니 이건 당연한 건데 왜 그걸 모르냐”는 등의 주관적인 설득을 펼치면 거의 성과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납득 가능한 데이터를 제시하면 다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한번은 유저들을 대상으로 내가 제안했던 기능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고, 그 결과 80% 이상이 그 기능을 필요로 한다고 답변을 했었다. 그 데이터를 제시하자 어렵지 않게 그 기능을 추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전에는 반대했던 사람도 흔쾌히 결과를 수용했었다.

물론 남들을 설득하는 일에 너무 치중해서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쓴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빨리빨리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내부 설득에 시간을 쏟는단 말인가. 하지만 어차피 일은 사람이 하는 거고, 육체노동이 아닌 지식 노동은 그걸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100% 납득이 되어야 최대의 성과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일견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고 시간낭비처럼 보이지만 큰 그림에서 본다면 그것이 오히려 지름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하는 대상은 시장이나 사용자 니즈에 대한 것도 있지만 기술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구글의 경우 엔지니어 출신의 PM들이 굉장히 많다. 코딩을 직접 할 필요는 없지만 엔지니어들과 함께 깊은 기술적 대화를 할 수 있는 기술적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실 나도 가장 부족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말과 글에 능해야 한다 

팩트와 데이터만큼 중요한게 없지만, 그 팩트와 데이터를 전달하는 소위 “딜리버리”역시 매우 중요하다. 세상은 이성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감성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중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두리뭉실한 말이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말과 글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주위의 뛰어난 프로덕트 매니저들을 보면 하나같이 정말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잘 한다”는 말은 여러 가지를 포함하는데, 단순히 말을 번지르르 잘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온 이메일이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되는데 최대 24시간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든지, 단순히 이메일을 포워딩만 하고 잊어버리는게 아니라 그 이메일이 잘 처리되고 있는지를 끝까지 팔로우업 하는 것, 이런 것들도 크게보면 모두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다. 목표는 자기가 커뮤니케이션 잘 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게 아니라, 일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모든 이익 대변자 (stakeholder) 들이 다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글쓰기 능력도 중요한게, “팩트”라는 것 역시 몇단계 노드를 거치는 동안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왜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했던 게임중에, 매우 쉬운 단어 하나를 보여주고 다음 사람에게 그 단어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았는가? 불과 4명만 거쳐도 전혀 다른 단어를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점점 가면 갈수록 얼굴을 맞대고 같은 물리 공간에서 일하지 않고 지리적으로 분산된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distributed company”)가 많아지는 추세이고, 따라서 장황하지 않게 간략하지만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글쓰기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프로덕트 매니저는 너무 바빠서 이메일 하나 쓰는데 정말 짧은 시간밖에 사용할 수 없다. 글뿐만 아니라 말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내에 핵심적으로 말과 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갖추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단순히 친목 모임에서 자기 소개를 시켜봐도, 어떤 사람은 단 몇마디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인생 살아온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하는데 결론을 못내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사람들은 회의때도 똑같은 양상을 보인다. 이런건 다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다.

덕을 갖춘 사람

실제적인 부분들을 많이 이야기헀지만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는 인성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많은 지식도 쌓아야 하고, 데이터와 팩트에 기반해서 주장도 펼칠 줄 알아야 하며,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좋아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덕”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때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강력한 어조로 자기 주장을 펴면서 어려운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하는게 프로덕트 매니저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계가 아닌 인간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저 사람은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사람,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프로덕트 매니저는 보는 앞에서는 사람을 있는대로 칭찬하지만 돌아서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사람보다 자신의 공을 은근히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을 상대방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좁은거고, 또한 사람이란게 얼마나 영특한 동물인데 그런 것을 모르랴. 정말 인격이 앞선 사람은 상대방이 없거나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을 때에도 그사람에게 공을 돌릴 줄 아는 사람이다.

다시한번, 프로덕트 매니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하게끔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결국 자신을 스스로 내세울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대로 열심히 일을 해주어서 좋은 성과가 나오면, 자기는 아무 일도 안해도 자연스럽게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