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ive Senior Intelligence

Hollobit 님께서 시작하신 웹 2.0 워크그룹에서, 요새 일명 "얼음땡 프로젝트" 라는 자기 소개 이메일 릴레이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써야 한다...) 다들 자기 소개들을 하시는데 어찌나 쟁쟁들 하신지. 배울것 투성이다.

예컨대, 어제 만박님께서 메일에 이런 말을 하셨던 게 마음에 확 와닿았다. "방법론이고 나발이고 간에 결과가 없으면 세상에 없는 것이다. 기획하고, 생각하고, 말만 하다가 못한 일들이 많다..." 전적으로 맞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 아직 안나온 것은, 없는 것이다.

헤헤. 사실은 나도 자리를 옮기면서 이 전략을 구사해야지, 하고 마음 먹었긴 하다. 방망이 짧게 잡고 단타를 쳐 나가는 전략 말이다. 단타를 자꾸 쳐나가야 자신감을 갖고 타석에 들어서서 가끔 홈런도 칠 수 있는것 아닐까? 운이 좋으면 그 와중에 도루도 할 수 있는 것이고...

헌데, 방망이 짧게 잡고 타석에 들어서다보니, 즉 짧은 시간에 우리조직의 의미있는 성과를 내려다 보니 자꾸 구성원들의 일에 개입하고 참견하게 된다. 언제까지 이거 해내야 하는데, 잘 되고 있는건지? 미진한 부분은 없는건지? 마치 라면 끓이다가 자꾸 냄비 뚜껑 열어보듯이, 중간 점검질을 해대고 있는 관리자로써의 내 모습이 보인다. 실제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라면이 아니라 밥일지도 모르고, 밥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얼마간 뜸이 들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다행히 우리 구성원들이 아직까지 그런 나의 모습에 피로감을 보이고 있진 않은 듯하다 (내가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우리 구성원들 너무 고맙게도 열심히 해주고 있어서, 몇 주만 더 고생하면 시장에 몇 건의 작은 신호들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이런 고민을 비롯하여, 요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린아이처럼 많은 것들을 새로 배워 나가고 있다는 게 맞겠다. 여러 사람들의 삶을, 비록 전부는 아니겠지만 얼마간은 책임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다. 이 느낌은 새벽 세시까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이 느낌이 과중한 부담감과 동일한 건 아니다. 이 멋진 사람들과 어떻게 의기 투합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자신이 가진 100% 이상을 일에 재미있게 쏟아부을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즉 어찌 보면 "설레임과 재미가 섞인 부담감"이라고나 할까?

새벽 세시까지 침대에서 수첩에다 뭘 써가며 뒹굴고 있고, 그 수첩에는 때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을 우리 구성원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나를 혐오스런 변태 Big brother 쯤으로 보겠지? ^^ 이처럼 자꾸 부지런해질려고 하는건 초보 CEO 가 빠지는 전형적인 함정일지도 모른다.

며칠간 오간 선배들의 메일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중 몇 분은 이 자리를 거쳐가신 분들이겠지. 그래서 이 분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척 하면 아시겠지... 반면, 이 자리에 있어보지 않은 우리 구성원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요새 내가 느끼고 있는 동일한 느낌을 가져줄 순 없을 테지 (물론 나도 이제 겨우 달포 남짓 있어본 거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그들과 나는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회사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지언정, 집에 가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하는 생각은... 다분히 다르겠지.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서있는 자리는 무척 외로운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겠지..

더이상 오바하기 전에 이쯤에서 그만 두어야 하겠다.^^ 암튼 그래서 결론은 한없이 겸손해지고, 선배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집단 지성 중에서도 특히나 집단 선배지성 (Collective Senior Intelligence) 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Chester 님도 TNC 선배였구나. 역시 Chester 이양반은 사람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안다. 자기 혼자서도 잘 운영할 수 있는 회사에 나를 부르더니, 그냥 모든걸 믿고 맡겨 버린다. 그러니 더 죽겠다. 날 덥썩 믿어준 사람을 내가 어찌 실망시키겠나.

연말이다. 약속이 무지하게 많아지고 있다. 집단 선배지성을 배우기 좋은 때가 이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