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크런치, 버그, 그리고 꿈

나를 포함해서, 한국의 웹 업계에 있는 왠만한 분들은 테크크런치를 비롯한 미국의 웹 소식을 열심히 읽는다. 구글에서 영어단어 "Web 2.0" 이라는 쿼리를 가장 많이 검색하는 게 한국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로, 우리나라 분들은 해외 미디어를 많이 접한다. 반면 테크크런치가 소개하는 한국 웹회사는 거의 없다.

나는 이런 현실이 싫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싫다고 앉아서 말만 하고 있는 내 자신은 더 싫다.

순수히 취미 차원에서 아침 출근전 영문 블로그를 쓰고 있다. 그런데 때론 할 얘기가 없다. 전세계를 향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우리나라 웹 서비스가 별로 없는것 같다. 우리나라 웹서비스라면 거의 다 포털인데, 포털들의 서비스는 메일이든 검색이든 거의다 해외에 있는것의 한국 버전 아닌가.

이러다보니 한국이 (웹 인프라 말고) 웹 서비스로써 세계에서 알아줄 만큼 유명한 것 같진 않다. 작년에 서울에서 열린 웹 2.0 컨퍼런스에서 해외 스피커라는 인간이 와서는 "너네들 플리커가 뭔지 아니?" 이러고 있질 않나, 작년 여름에 야후에 갔을 때 "여기 실리콘밸리에는 웹 2.0 이라는 트렌드가 있는데 말이야" 이러질 않나... 한대 휘갈기고 싶었지만 맞은사람이 아플까봐 때리지 않았다 (무슨 소리?^^)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이 식당에서 자랑삼아 테이블 위에 꺼내어 놓고 식사를 한다는 명품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에 있을때,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로벌한 성공 확률이 높은 산업은 "하이테크 제조업" 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빠르고, 손재주가 좋으며, 열심히 일한다. "제품"의 경우 "서비스"에 비해 문화의 영향을 덜 탄다. 핀란드같은 나라에서도 글로벌하게 먹히는건 역시 국가의 지원과 산학 클러스터를 깔고앉아 있는 하이테크 제조업 회사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해서 우리나라는 하이테크 제조업이 살 길이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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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glabs.net

그러나 제조업 역시 창의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점점 힘들어질 것이고, 반대로 이야기해서 창의성을 가진 자들에게로 하이테크 제조업의 이니셔티브가 점점 넘어갈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아시아의 전자제품 회사들이 아무리 규모가 커봤자 창의성은 자기들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이노베이션은 소프트웨어를 넘어 하드웨어로 확장되고 있다. 재생 에너지? 바이오? 고품질 오디오? 웹 2.0과 오픈소스를 하드웨어에 적용한다는 기막힌 발상? 실리콘밸리가 이노베이션의 주역이다.

즉, 그것이 하이테크 제조업이든 소프트웨어든 웹서비스든, 결국 점점 "창의성"이 너무도 결정적인 성패의 요건이 된다. 그러한지라, 내게 아직은 얼마간 남아있는 창의성의 모조(mojo)가 모두 없어지기 전에, 아니 그보다 먼저 세상에 맞장뜨고 맨바닥에 헤딩하는 것이 점점 두려워지기 전에 (= "애가 생기기 전에"?^^) 꿈을 향해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조바심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내겐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고, 그다지 변하지도 않아왔으며, 기회가 있는대로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왔던 꿈이 있다. 그 꿈은 너무도 강렬해서 때로 내 마음 한구석을 아릿하게 짓누를 때도 있다. 그건 실리콘 밸리다. 가고 싶고, 갈 것이다. 그러나 때를 봐야겠고 무기를 갖추어야겠다. 등소평이 미국에 버금가기 전까지는 미국 몰래 달빛 아래서 숨어서 무검을 익혀야 한다고 했던가? 그들은 30년간 달빛 아래서 무검을 익혀서 이제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참이다. 나도 무검을 익힐 것이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