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

8월 15일
 
06:00 PM
 
기획자들의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일장 연설을 한다. "좋은 기획의 기준이 뭔지 아나? 만일 여러분들이 로또에 당첨되어서 15억의 돈을 탔다고 해 보자. 정말 이건 된다는 확신이 있는 기획이라면, 당신이 로또에서 얻은 돈 반 정도는 투자할 것 아닌가? 지금 여러분들이 내놓은 기획 결과물에 로또 당첨금의 반을 투자 하겠는가? 다음부터 그걸 좋은 기획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바로미터로 삼도록 하자.."
 
말은 좋다.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은 매사에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사나?
 
가정에서든, 회사에서든 자신의 사람들을 남들과 비교하면 절대로 안 된다. 독일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차범근 감독이 선수들에게 했던 말 중에서 선수들이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 이거라고 한다. "얌마, 독일서는 공 그렇게 안 차." 나같아도 이런 말 들으면 "Ssyang 그럼 니가 차" 그러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기업의 기억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옆에 있는 우리 구성원이 회사 컴퓨터에 음료수를 쏟아서 고치러 가야 한다는 말을 듣는 도중,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조....좀... 태연한데?" 사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살다보면 컴퓨터에 음료수가 쏟아질 수도 있는 법인데, 회사 컴퓨터 (기계 자체보다는 데이터)를 훼손시키는 사람의 경우 가차없이 시말서를 쓰고 큰 벌을 받았던 대기업의 기억이 은근히 나도 모르게 작용하는 모양이다. 사람의 생각은 과거 경험에 의해 상당부분 지배를 받는 법임을 스스로 깨닫고, 내 생각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칫 내 뜬금없는 말때문에 당황하지 않도록 스스로 한번 더 조심하게 된다.  
 
08:30 PM
 
개인 생활을 제쳐두고 열심히 일에 매달리는 고마운 디자이너. 그러나 그에게 때로는 일들을 제때 매조지 하는게 효과적이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 예전에 들은 말을 건넨다. 지식 노동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천은 "끝내지 않은 일을 남겨두는 것" (having some unfinished job left) 이라는 말.
 
육체 노동자는 주어진 양만큼의, 그것도 눈에 매우 선명히 보이는 일을 끝내면 그날의 과업이 성취되므로, 몸은 피곤할지언정 그날의 과업을 깔끔히 마무리하고 집에 가서 부인과 저녁먹으면서 TV를 보는 시간이 그렇게 달콤할 수밖에 없지만, 지식노동자는 일의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므로 집에가서 쉬어도 쉬는게 아닌 찜찜한 기분이 들고, 잠도 쉽게 자기 힘들다는 말. 그래서 지식노동자는 자신 스스로 그날의 과업을 명확히 정하고 하나씩 그어나가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것...
 
열심히 일하는 그가, 그러한 습관을 길렀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잠을 더 달콤히 잘 수 있도록.
(잠은... 이미 잘 자고 있는거 아닌가?^^)
 
09:20 PM
 
결혼한지 며칠 되었다고, 아내가 친정에 간 관계로 불이 꺼진 아파트를 혼자 들어가는 기분이 묘하다.

결혼한 상태에서 아내가 친정에 갔을 때 집에 혼자 남겨진 남편들의 최고의 친구가 누구인지도 알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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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PM
 
오늘 하루도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했나 한번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하루 성찰록을 썼던 프랭클린 같은 위인이란 말은 아니다. 그냥 샤워할 때 뜬금없이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란게 있지 않나.
 
유능한 정치인에게 누가 물었다고 한다.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의 비결이 뭐냐고. 그랬더니 그가 대답하길, 나는 수백만명의 사람에게 인정받기 이전에 실은 주변의 서너 사람에게 뜨겁게 지지받았었다, 라고 대답했단다. 나는 주변의 서너 사람에게 뜨겁게 인정받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