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Korea - 일본 소고

일본에서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를 포함한 프로젝트 수행팀은 일단 한국으로 귀국했다. TNC가 일본에서 구축한 서비스는 기술적으로는 모두 완성되었지만, 컨텐츠를 더 확보해야 하는 관계로 11월 경에 오픈할 예정이다. 우리 구성원들의 땀이 들어간 프로젝트라서 애정이 많다. 오픈하면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 (하더라도 아마 일본어의 압박때문에 감흥이 바로 오진 않을 수도 있겠다.)

이 프로젝트를 레퍼런스로 해서, 일본 기업들의 문의가 들어오면 선별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지난주에 일본 최대 전시회인 CEATEC 기간에 동시에 열렸던 "Jetro Bizmatch" (일종의 "외국 기업과 일본 기업간의 만남의 장" 행사) 에서 TNC는 히타치 등 일본 업체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했던 기업이었다. 꼬날님이 아주 인기가 많았다는 후문. 아울러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Textcube 내려받기 사이트도 조만간 일본에 런칭할 예정이다.

아무튼 일본에서의 수개월을 보내고 우리나라에 다시 오니, 인사드릴 분들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것 같다. 특히나 결혼식에 와 주셨던 분들... 결혼 하자마자 일본에 가느라고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고, 사람만큼 소중한 게 없는데, 너무 무성의했다는 반성이 든다. 반대로 일본에서 만났던 분들께도 한국에 다소 빨리 넘어오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다. 살면서 일본이야 자주 갈 일이 있을 테니, 다음번에 뒤늦지만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겠다.

뭐 수년 산 사람도 아니고 해서 "일본 다녀온 소감" 을 밝히긴 우습지만, 몇가지 나만의 관점에서 느낀 점을 두서없이 써보면 이렇다.

- 사람들이 창의성은 크지 않지만 죽어라 일한다. 이들에게는 머리띠 하나 질끈 동여매고,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일해내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DNA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20대들도 이러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책임을 잘 지지 않으려는 경향은 가끔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일본인들과 창의적으로 일하기는 매우 힘들다. 속이 곪아 터지려는 한국인 매니저들도 꽤 보았다. 그러나 권위를 갖춘 사람이 명확하게 짚어주면서 시키는 일은, 밤 11시까지 일하면서 어느정도 해 내는 것 같다. 일본말을 유창하게 하고, 얼굴이 매우 두꺼운 한국인 사장이 일본인 현지 매니저들을 통해서 공격적으로 사업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듣던것보다 더 보수적이고 에너지 레벨이 낮은, 안정된 사회다. 일본은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핵폭탄 2발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침략받지 않은 나라라고 한다.  반면, 한국은 역사의 거의 매 순간 침략을 경험했으며, 1950년대에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 새 출발한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이 좋게 말하면 빠릿빠릿하고, 나쁘게 말하면 살기어린(!) 데는 이런 배경이 있는 듯하다. 줄 잘못 서면 바로 죽으니깐, 정신 똑바로 차릴 수밖에 없다. 반면 일본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바로 "눈 까는" 경향이 있다. 간혹 피가 뜨거운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을 답답해하고, 훨씬 vibrant한 한국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가 안정되다 보니, 경제에서도 변혁보다는 진화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상품의 세분화는 상상을 초월해서, 롱테일이 아니라 롱, 롱, 롱테일이다.

- 배울 점이 손으로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다 좋은 건 아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 그런게 어디있겠나. 그러나 진짜 배울 점들이 "널려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고, 뭐 하나를 해도 끝까지 야무지게 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뭔가를 잘못하면, 좀 심하게 말하면 싹싹 빌 정도로 사과한다. 한번은 NHK 앞에서 유명 가수의 공연이 끝나고 밖에 무리지어 있던, 우리로 따지면 "빠순이들" 이 빼곡한 곳을 자전거로 지나갈 일이 있었다. 급하게 어딜 가던 중이어서 자전거 경적을 울리자, "날라리"라는 말로 도무지 표현이 안되는 기막힌 의상을 입은 빠순이들이 다들 "스미마셍" 이러면서 길을 터준다. 동방신기 공연 끝나고 잠실 체육관 앞에서 한번 이렇게 해 보라. 어떤 반응이 나오나. "이런 삑~ 을 봤나 니가 삑 ~ 비켜가 이 삑~ 아." 이럴 거다 ("삑~"은 공중파 TV에서 욕설에 덧입혀지는 그 효과음...) 대상을 속칭 "빠순이"들로 국한시키면 안되겠지만, 하여간 전반적으로 한국인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잘 안하고,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건드리면 폭발할 정도로 공격적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인 듯하다.

- 우리보다 대국이다. 국토는 남한기준 4배, 인구는 3배 많다. 우리는 일본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데, 일본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러모로 한국은 대만과 유사한 레벨의 존재로 인식되는 듯하고, 라이벌 의식은 중국에 느끼는 듯하다. 우익 단체들이 중국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여기저기 붙이고 다니며, 2차대전때 일본이 중국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었다는 사실에 노스탤지아를 느끼는 것 같다.

-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그 무언가"를 하나씩 갖고 있다. 어떤 이는 철도 바퀴에 달린 스프링에 집착하고, 어떤 이는 계란말이 제조법에 집착한다. 일본인들은 누구나 오타쿠이다. 아키하바라의 애니메이션 오타쿠는 "애니메이션" 이라는 분야에 대한 오타쿠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위키피디아는 정말 잘 된다. 전철역 하나하나마다 위키 페이지가 존재하는데, 거의 역사실록이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이들이 개인적인 세계에 몰두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를 터치하지 않는 경향은, 가끔 이해하기 힘든 엽기적인 범죄를 낳기도 한단다. 일본인들 100명중 한명이 정신이상자이고,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 그러고 보니, 자기만의 특별한 그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을 넘어서, 어쩌면 모두가 다들 배역을 하나씩 맡고 역할극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하나씩의 아이덴티티를 고르고, 그에 충실하는 것일까? LA 뒷골목 라이프스타일, 즉 Hummer 를 타면서 대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근육을 키우는 일본인들이 있는 반면, 베컴과 거의 똑같은 컨셉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알고 있던 생각들은 실은 한국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다. 여자들이 모두 천편일률적인 루이비통 핸드백을 들고 다니고, 성이 문란하며, 학교에서 왕따가 만연된 나라는, 실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다.

- 부동산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들의 지역개발 방법론은 배울 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사철을 활용해서 도심 곳곳에 주거지와 부도심을 형성해 놓았다. 동경 근처는 왠만한 데를 가도 번화가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도시인 인구 2,600만의 동경은, 희안하게도 서울만큼 차가 막히고 복잡하지 않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 "지역"이나 "내 고장" 이라는 개념은 매우 희미해져 있다. 그러나 일본은 내고장 축제도 여전히 열리고, 동네의 조그만 샵들도 다 먹고 산다.

- 마지막으로 일본 여자들은, 우리나라 여자들에 비해서 호리호리하고 멋 내는데 훨씬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러나 타고난 원판은 그다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들의 단점을 감추는 화장술 만큼은 정말 세계 최고인 듯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나만 알고 있는 일들도 아닐 테고 해서 여기까지. 일본에서 같이 있었던 다른 분들의 블로그에 훨씬 더 재미있는 내용이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