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용자인가?

우리는 흔히 이야기한다. "그거 사용자가 과연 원하는 거야? 사용자 입장에서 정말 제대로 생각해 봤어?"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영어의 "Take it with a grain of salt"라는 표현대로, 분명 "맞는말"이지만 동시에 약간의 주의를 요하는 면도 있다.

Blink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의 식품 회사들이 더 나은 스파게티 소스를 개발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FGI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사용자 조사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나왔던 결론은 사용자들은 스파게티 소스에 뭐를 많이 넣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재료가 많이 들어간 스파게티 소스인 "엑스트라 청키"라는 제품은, 적어도 사용자 조사를 통해서는 결코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제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엑스트라 청키 소스가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현재 미국에서 팔리는 스파게티 소스 중 1/3은 엑스트라 청키 소스다.

무엇을 말하는가? 기획자들은 사용자 입장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각하되,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만 듣고 만들어 주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때로는 사용자들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마치 엑스트라 청키 소스가 나오기 전까지 그걸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사용자들은 때로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 지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하는게 옳겠다. 당신 회사의 직원도 아닌데, 고객이 그 제품에 대해서 당신만큼 생각할 리가 있나?

요컨대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되, 그들을 이끌어 간다"는 말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획자 자신이 어떤 제품의 열혈 유저여야 하며, 그 서비스에서 자신이 정말 강렬히 원하는 피쳐들을 소신있게 만들어 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꾼 훌륭한 제품이나 서비스들 중에서 기획자 자신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획의 과정에서 주관적인 것은 괜찮으나, 일관성이 없는 것은 괜찮지 못하다. 다수의 똑똑한 사람들이 기획 과정에 참여한지라,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잘 융화시켜 놓은 서비스 -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서비스가 있으나, 직접 거론하긴 좀 그렇고 - 가 큰 반향을 얻고 있지 못하는 사례를 보라. 도대체 어디에 방점이 찍혔는지, 뭐부터 눌러야 할 지를 알 수가 없다. 반면, 내부에서는 "미친놈"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자기 고집을 부린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의 제품들은, "일관되게 주관적임으로써" 오히려 성공한 사례다.

(음... 좀 새는 얘기지만, "일관성"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까칠한 사람, 부드러운 사람, 호탕한 사람... 다 괜찮다. 그러나 어느순간 부드러웠다가 다음 순간 까칠해 지고, 또 호탕해 지기도 하고.. 이렇게 바뀌는 사람에게는 믿음을 줄 수 없더라. 이런 사람들의 패러다임은 바로 전에 읽은 글이나 신문기사에 의해 좌우될 만큼 깊이가 없고, 또한 바로 전에 누구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깨달음인 양 다음 사람에게 이야기 해주곤 한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조심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일관성",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이는 사용자가 어찌 생각하건 간에 자기 고집을 부려도 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 제품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말 것이다. 아래 보이는 저 자동차 처럼 말이다. (오너분께는 죄송합니다만...)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가치임에 분명하다. 단지, 기획자 당신 자신도 소중한 한 명의 사용자라는 것을 잊지는 말라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좀 물어보고 만드시지 그러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