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고 싶으면 이바닥을 떠나라?

신문지상에서 줄곧 보아온 이공계 기피현상이 피부로 다가올 때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 바닥"을 떠나는 것을 지켜볼 때다. 그나마 이공계를 선택한 학생들조차 의사, 변호사, 공무원, 금융 컨설턴트 등 "컴퓨터 분야만 뺀 나머지 분야"로 어떻게 해서든 진출하려는 꿈을 꾸는 곳이 작금의 우리나라인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만큼 물질지향적인 사회가 없다. 얼마전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인 2세(나의 대 선배님의 딸)가 한국에 왔다가 적응을 못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실망섞인 말인즉슨, 한국은 너무 물질주의적(materialistic) 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녀는 상대적으로 가진게 많은 사람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컬럼비아 로스쿨을 나와서 국내 굴지의 통신회사 대표를 지내셨고 지금은 법무법인의 파트너를 지내고 계신다. 그런 그녀가 한국을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으로 느낀다면, 하물며 가진자들이라는 범주에서 살짝 비껴나가 있어서 자칫 주눅들만한 상황을 날마다 겪어내야 하는 이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마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역시 이나라에서는 돈을 가져야 해", 라는 교훈을 날마다 되새김질하며 살아가고 있진 않을런지. 아니, 고등학교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요새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의 몇평짜리 집에서 사는지를 서로 비교하는 세상이므로.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는데, 보니깐 방법은 의사, 변호사가 되거나 아니면 돈 자체를 다루는 투자은행 같은데를 들어가는 게 가장 좋아 보이는 게다. 대학 나와서 똑같이 5~6년 고생한다고 치자. 의사라면 잘하면 개업을 했을 꺼고, 금융 분야라면 잘하면 JP모건같은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높은 타이틀을 단 채 체어맨을 굴릴수도 있었을 꺼다. 반면 개발자로 5~6년 고생하고 나면, 삼성 SDS 선임 정도면 꽤나 잘 풀리는 케이스 아닐까. 삼성 SDS 선임이 나쁜 것도 아니건만, 우리네 대학생들은 투입 시간에 대비한 결과치(ROI)를 분주히 따져보면서 의대와 로스쿨로 가는 막차에 줄서기를 하려 하고 있진 않을런지.

영화 아이언맨과 배트맨의 공통점은? 소위 긱(Geek)이 되게 멋진 주인공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현실과는 반대되는 "의도된 교화의 메시지"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미국에서는 뛰어난 과학자/기술자가 쿨한 존재로 부각될 때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이미지를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좀더 과학과 기술의 분야로 유입되는 젊은 피가 많았으면 좋겠다.

일본인들에 대해서 존경하는 점 중 하나는, 그들이 물건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모노쓰쿠리" 라고 하던가?) 그들은 물건을 만들고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DNA를 지녔고, 지금도 동네 어딘가의 공업소에서 두세명이 모여서 "잇쇼켄메이" 하고 있을 거다.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만한 재미가 또 있을까. 물론 금융산업 역시 중요한 산업이고 우리나라가 그게 없어서 IMF때 홀라당 당했지만, "만드는 재미"에 빠진 젊은이들의 수가적어진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때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오늘 모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말 때문에 쓰는 포스팅이다. 이공계 전공자인데, 스무명 남짓한 동기들 중 4명이 벌써 금융권에 취업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한때 코딩의 재미에 맛을 들였던 친구도 있다고 하니, "IT 분야는 방금 또 하나의 인재를 잃었다"는 시적 표현을 쓸 만하다. 지난주 금요일에 고려대학교에서 벤처와 창업에 대한 강연을 한꼭지 했는데, 그때 강의실에 모여서 부족한 강연을 번뜩이는 눈으로 경청해준 몇명의 친구들이 새삼 고맙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