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웹 아시아가 가져다준 선물, "일하는 재미"

오픈 웹 아시아 행사가 성황리에 마쳤다. 쉐라톤 워커힐이라는 다소 동떨어진(?) 장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300분이 넘는 분들이 오신 나머지 나중에는 부족한 의자와 식사를 채우기 위해 거의 전쟁에 가까운 노력을 불사했으니 말이다. 컨퍼런스 이후에 열렸던 "네트워킹 디너"역시 컨퍼런스 본행사 못지않은 좋은 자리였던 것 같다. (네트워킹 디너의 경우 초대제로 운영이 된지라, 모든 분들을 모시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린다.) 

참석했던 분들이 대체로 좋은 평을 내려주셔서 다행이다. 하지만 고백컨대 행사 진행상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연사들중 한두명은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놓고 자기 회사 홍보로 발표를 채웠다. 또한 화두를 "아시아 웹"에 두다보니 게임에서부터 모바일까지 너무 주제가 분산되었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분들이 호소(?)했던 불편은 하루종일 영어로만 진행되는 행사에서 통역기를 끼고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점인것 같다. 

초기부터 컨퍼런스를 국제 컨퍼런스로 포지셔닝한데는 나름의 곤조(?)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예 진행조차 한국어가 아닌 100% 영어로 했었어야 한다는 반성마저 든다. 재수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건 우리나라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에서다. 일본 동경에서 중국 북경까지 비행기로 두세시간이면 가는 마당에, 지리적으로 일본과 중국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그토록 외치는 "허브국가"가 될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질 리 만무하다. 지도상으로 보면 너무도 조그만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동양의 네덜란드"가 되는 것 외에는 없다고 믿는다. 즉 지리적인 이유에서의 허브가 아니라, 오픈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변되는 국민 문화적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나본 네덜란드 사람 중에서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비즈니스 장소에서 쭈뼛대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오렌지"를 "어린쥐"로 발음하자는 얘기가 절대로 아니다. 거기에 집착하는 건 초점을 한참 잘못 맞춘거다. 요는 영어를 매끄럽지 못하게 해도 튤립을 누구에게든 팔 수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비즈니스적 개방성을 우리도 갖자는 거다. 안그러면 소위 "큰애들" 사이에서 어중간한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거창한 얘기 할거없이 보다 쉽게 말하자면, 오픈 웹 아시아는 혹자들이 "어우 재수없어"라고 욕하더라도 국제 컨퍼런스, 영문 컨퍼런스로 당분간 가보는게 어떻겠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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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모르고 행사 하나 시작했다가 정말 세상에 쉬운 일 없다는 걸 대박 깨달았다. 그치만 재밌었다. 그래서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재미를 주는 일은 다소 힘들어도 끝까지 하게 된다. 

일이라는 게 과연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걸 느낀 건 대학교 1학년때였다. 지금은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만, 믿거나 말거나 대학교때까지 나는 "문학청년"이었다. 고등학교때 개인 문집도 내고 그랬었으니깐. (물론 아무도 읽는 사람은 없었다^^) 암튼 대학교 1학년때 문학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때, 가을 축제때 올릴 연극의 연출을 덥썩 맡게 된 적이 있다. 우리는 정말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막이 내리고 박수를 받을 때즈음엔 거의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희열을 느꼈었다. 

그때 나는 "일에서의 재미"라는게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언어는 일상을 담아내지 못한다. 일상이 데이터라면, 언어는 기껏해야 메타데이터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래서 마치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도 팔색조의 깃털색처럼 다양한 의미를 갖듯이 (모성애적 사랑, 이성간의 사랑, 플라토닉 러브 등등), "재미"라는 단어 역시 단어 자체는 하나라도 그것이 쓰이는 컨텍스트에 따라서 정말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이다. 가령 "일의 재미"라고 말할때의 재미란, "여자랑 노는 재미", "술먹는 재미"라고 말할때와 단어는 완벽히 공유할지언정 그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는 거다. 

잘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 못 따라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재미붙인 사람 못 따라간다고 했던가? 그래서 우리 선배들은 늘 일에서도 재미를 붙이라고들 말하지만, 어디 일이라는 게 과연 재미있을 수 있긴 한건가? 그 대답은 "예스"다. 그렇다. 일은 재미있을 수 있다. 물론 그에 앞서서 그 재미라는 게 뭘 의미하는 건지, "제 1조 1항, 용어의 정의"를 해야 한다. (얼마전까지 계약서를 많이 볼 일이 있었던지라...) 일에서의 재미란 여러 사람들이 정말 예외없이 성실을 다하여 같이 이루어나간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을 볼 때의 재미, 즉 쉽게 말해서 모두가 고생한 후 드디어 한 편의 연극을 올리고 난 후의 그 느낌,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오픈 웹 아시아는 오랜만에 그런 일의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 준 행사였던 것 같다.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정의 깊이는 옅어지는 게 아쉽지만, 아무튼 그 농담(濃淡)은 옅었을 지언정, 그것은 분명히 "재미"라는 녀석이었음을 나는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게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해준 분들은 꼬날님, 동신님, 태우님, 멜로디언님, 이안님, 그리고 수많은 이메일을 통해 행사 기획에 같이 머리를 맞댄 10명의 해외 오거나이저들이었다. 내가 오픈 웹 아시아를 기획하면서 거둔 수확은 바로 그거였던 것 같다. 

사진 출처: kko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