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약 설명

병원에 이어 찾아간 약국에서 한컷. 
긴 말이 필요없이, 바로 와닿는 product description. 고객은 이런 단순한걸 원한다. 


"1GB NECC 듀얼 채널 DDR2 800MHz SDRAM 메모리" 등의 어려운 표현보다, "You can burn DVD" 라는 생활형 표현이 더 와닿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언젠가 발표 자리에서 "고객이 원하는 건 명사보다 동사" 는 말을 한것 같은데, 해놓고 보니 좋은 말인데 나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다. 

병원 화장실 앞에 써있던 문구. 
일본에 오랜 시간 프로젝트 때문에 머무르다가 김포공항에 딱 발을 내딛자마자 느낀 것이지만, 우리나라 분들은 무척 화가 나있다.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화를 대강 분출하신 저자는, "집"의 보조 설명을 위한 아파트 클립아트를 삽입하는 평정심을 보여주시긴 한다. 
화내지 말고 살자. 

오랜만의 육아 포스팅

포동포동.. 몸에 각진 구석이 한군데도 없어요 우리 이삭이.^^
요새 울때도 에융에융 말할려고 해서 퍽이나 귀엽다.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말은 이런 걸까? 

뼛속까지 문돌이

이를테면 금요일 밤 11시. 좋은 사람들과의 훈훈하고 떠들썩한 저녁이 파한 뒤,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마치고 나서 PC앞에 앉아있는 시간. 주말 전야만이 줄수 있는 고즈넉함의 끝자락이 다 사라지기 전에 문고리에 잡아 매놓기라도 하고 싶어지는 시간이라면, 여러분들은 보통 무얼 하고 싶어지시는지? 내 경우, 그건 바로 "글쓰기"다.

두달쯤 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자기 소개를 할 일이 있었다. 한 몇초간 약간의 막막함이 느껴졌다. 워메, 날 어떻게 소개해야 하지? 그때 내 앞에서 자신을 소개한 누군가가 자신은 "뼛속까지 공돌이" 라는, 예의 그 표현을 썼다. (보증컨대, 그는 뼛속까지 공돌이 맞다.) 그때 바로 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던 생각은, 어쩌면 나는 "뼛속까지 문돌이"는 아닐까 라는 -- 그당시 분위기로 따지자면 더없이 발칙하고 반항적인 생각이었다. (공간을 점유한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엔지니어었다는;;) 

그러니깐 그 짧은 시간에, 평소에 장기 메모리 공간에 묻어둔 상태로 잘 꺼내보지 않았던 기억들이 갑자기 떠올랐던 거다. 그래, 고등학교 2학년때 눈이 무척 많이 오던 날 첫번째 개인 문집이랍시고 그걸 내기 위해서 학교 근처 제본소를 들락거렸던 적도 있었지.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1년 반동안 "표문연 (표본실의 문학 연구소)" 이라는 동아리 생활도 나름 열심히 했었고... 

지금껏 글재주는 없지만, 글쓰기라는 대상에 대한 열정만은 컸던 것 같다. 대학시절의 나는, 이를테면 헤밍웨이가 쿠바의 한 호텔에 오랫동안 투숙하면서, 후텁지근한 방에서 이빨까지 시린 칵테일을 마시며 입에 시가를 문 채 타자기로 작품을 써내려갔다는 식의 이야기에 너무도 쉽게 매료되곤 했었다. 20대 후반, 팍팍한 직장생활이 힘들어 질때면 어느날 훌쩍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록키산맥의 침엽수 숲속에 자리잡은 조용한 통나무집의 전망좋은 2층 방에서, 수도사들의 그것과도 같은 간소한 삶을 살면서 정화된 마음으로 내면의 글쓰기를 하고 싶은, 지금 생각해 보면 "되도않는 상상"을 벌이곤 했었다. (그래, 어차피 상상인데 좀 인터내셔널하게 놀면 어떠랴.) 

나는 지금 참 특이한 감수성을 가진, 뼛속까지 공돌이인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있지만, 실은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뼛속까지 문돌이인지도 모른다. 그 자기소개의 시간, 비록 한 0.5초간이었지만.. 성(性)이나 인종이 아닌 "카테고리"에서도 소수자로써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문돌이의 성향을 가졌던 나는 어찌된 일인지 대학에선 자연과학을 전공했고, 일은 IT쪽 일을 해오고 있다. 심지어 지금은 더이상 이보다 공돌이적일 수는 없는 환경에서 일하게 되었다니... 물론 이런 트위스트가 없다면 인생의 페이쏘스적인 재미가 덜할지도 모르지만. 

한날 선생님의 글을 보고 나서 문득 생각나서 쓰는, 아무 쓸데없는 글이다. 

구글은 엔지니어링적인 회사

새로 나온 Gmail 테마중 하나인 "터미널" 테마.
나는 엔지니어들의 특이한 감성 코드를 언제쯤 100% 이해하게 될 수 있을까...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나를 지배하는 사람

예병일의 경제노트에서 발견한 내용이다.
나를 화나게 하는 자가 나를 지배한다. (중국격언)

의지와 상관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쁜 생각들에 단호하게 "스톱!" 하고 마침표를 찍는 습관을 들이자. 마음속으로 해도 좋고 입 밖으로 해도 괜찮다. 그러고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하거나 자기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떠올려도 된다.

구트룬 페이의 '똑똑한 대화법' 중에서 (21세기북스, 53p)

간혹 인격 수양이 덜 된 사람들 때문에 짜증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다. 뭐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묻지마 살인범도 있을 지경이니 말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들을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만 옳다고 믿다가 죽는 종자들은 꼭 있다. 예컨대 가끔 뒤에 숨어서 악플을 남기는 자들을 보면 말도 안되는 인터넷 실명제에 찬성표마저 던지고 싶어질 지경이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내가 발견한 그들만의 특질 한 가지는 바로 안치환 노랫말에 나오듯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따위의 "탐닉"이 아닌, 깊은 밤의 훈훈한 대화에서 묻어나는 인간관계의 참된 아름다움 말이다. 그들은 그런 아름다움이 뭔지도 잘 알지 못할 뿐더러, 남들에게 그러한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는 경우는 기대하기 조차 어렵다. 키큰 사람은 발돋움을 할 필요가 없는 법인데,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는 전혀 잘못된 점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쓴다는 점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정작 그러한 평가는 주위에서 내려주는 법인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속으로 다짐했던 것은, 혹시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등등의 생각이었다. 입냄새 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절대로 그걸 모르고, 남들 역시 그것이 과히 유쾌한 주제가 아닌지라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듯, 사람 됨됨이라는 것도 그런 비슷한 경우인 것 같다. 속으로 "아, 쟤는 정말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그걸 곧이 곧대로 그 사람에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일 자신에게 그런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 고마워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민감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미세하게 흐르는 기류를 감지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민감함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늘 혹시나 자신에게서 "인성의 입냄새"는 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내가 잘 못해서 하는 얘기다.  

여기까지가 무개념자들을 접하고 난 뒤에 흔히 했던 생각인데, 위의 글을 보니 한가지 생각을 더 해야겠다고 느껴진다. 그건 바로 그 인간의 잔상에 착념하여 사로잡히지 말고, 대략 무시해 줘야 한다는 점이다. 나쁜 영화일수록 잔상이 남듯, 무개념 인간들일수록 마치 바지에 묻은 진흙처럼 생각속에 꽤 오래 남는다. 털어 버리려 하면 오히려 더 넓게 번지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경우는 시간이 가장 좋은 약인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서 말라버리면 보다 가볍게 털어버릴 수도 있고, 아니 내가 활발히 활동하면 어느샌가 털어져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요컨대 내 생각을 그가 지배할수록 그가 이긴다는 것이다. 무개념 인간이 유개념 인간을 이기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읽는 당신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당신의 사람에 대한 판단은 옳을 것이다. 즉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 거기서 한번 위안을 삼으시라. 그 사람은 누굴 걸고 넘어질까를 늘 (설령 그게 그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찾고 있는데,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구태여 당신일 필요는 없다. 인생은 짧고 해야 할일은 많다. 비뚤어진 사람을 바로잡으려 애쓰지 말고, 그냥 대략 무시해 주고 당신의 인생을 챙기는게 더 낫지 않을까. 당신의 배우자/이성친구/동성친구/자녀와의 관계를 더 윤택하게 만들기에도 시간이 없어 죽겠는 판에 바보같은 사람 챙길 시간이 어디 있겠나. 그는 그렇게 살다가 인생이 주는 진정한 만족을 모른 채 생을 마감할 것이다. 오히려 느껴야 할 것은 연민의 정일런지도 모른다. 

"권투"를 빕니다

나는 한국 사회가 학연에 의해서 이끌리는 사회가 아니길 바란다. 그 이유는 만일 우리 사회가 그렇다면 나는 결정적인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2년가량 다녔지만 그때의 동창생들과 졸업 가운을 같이 입고 사진을 찍지는 못한지라, “동문회”라는 실체적 존재에 이름을 올릴 자격은 못 갖추고 있다. 마치 야구로 치자면 오키나와 전지훈련까진 같이 했지만 개막전 25인 선발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다고나 할까? 

그러한지라 업계에서 만나는 사람들 한명 한명의 인연이 내겐 퍽 소중하다. 물론 마치 공 다섯개쯤을 꺼내어 저글링하는 듯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지라, 부러 시간을 내서 인맥 챙기기를 하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만난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은 오래 가져가고 싶은 바램만큼은 가지고 있고, 사람을 만날 때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려는 노력 정도는 하는 듯싶다. 

이 글은 그런 지인에 대한 얘기다. 순전히 업계에서 만나서 친해진 지인 한명은 (*나중에 알고보니 학교 후배셨다), 요새같이 어려운 시기에 스타트업을 멋지게 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은 90%이상이 실행력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그 회사의 비전과 프로덕트의 방향성만을 놓고 보면 성공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인다. 백만명 이상의 전체 유저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올바른 방향성과 비전을 가지고, 실력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깔끔한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면, 적어도 한번 도전해볼만한 조건을 갖추어진 셈이 아닐까. 

물론 실제로 성공의 가도에 접어들지 그렇지 않을지는 “신의 영역” 이겠지만, 적어도 혼을 담아내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까지는 분명 사람의 영역이리라. 그리고 보통은 그렇게 자신들의 혼을 담아내는 서비스를 만들면 사람들이 어느정도는 관심을 기울여 주게 마련인 듯싶다. 그건 정성스럽고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유명한 한정식집이 늘 북적대는 이유이기도 하고, 인순이 콘서트가 매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요새 한다. 결국 서비스라는 것은 제공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접점 자체를 일컫는 말일 테고, 그러한 접점에는 언제나 기대치와 그에 따른 만족/실망이 필연적으로 동반되기 때문이다. 과장 섞어서 말하자면 컨퍼런스 하나를 흥행시키는 것과 웹서비스 하나를 흥행시키는 것 사이의 괴리는 생각만큼 천양지차가 아닐 수도 있다. 

열정으로 가득찬 그 지인이 성공하길 진심으로 기원드린다. 우선은 그와 그의 동료들이 “이만하면 됐지”가 아닌, 자신들에게 정말 가혹한 기준을 적용해서 누가 보더라도 박수치지 않을 수 없는 서비스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구성원 서로에 대한 배려가 사용자에 대한 배려를 넘어서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주변의 젊은 여자분들에게 내가 종종 주는 조언인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좇는 사람이 아닌 커리어우먼이 되어라"라는 말을 빌자면, 멋진 창업자의 이미지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닌 멋진 창업자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계속 열정을 뿜어내는 화수분을 하나 갖길 원한다. 내 경우에 그 화수분은 내가 인생에서 뭘 원하는지에 대한 내식대로의 확고한 해답과, 적어도 내가 가고 난 뒤의 세상은 내가 오기 전의 세상보다 조금은 더 낫게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가 성공하고 난 다음에 나를 모른척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투를 빈다. (방금의 오타는 오타왕 곽군의 모티브를 의도적으로 따라한 패러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