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 오버 더 레인보우

사람들은 청연과 국화꽃 향기를 얘기하지만, 내게 있어서 배우 장진영의 매력을 발견했던 (이라고 쓰고 장진영이 참 예쁜 여자라고 느꼈던 이라고 읽는다^^) 첫번째 영화는 "오버 더 레인보우"였다. 장진영의 사망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를 뒤돌아보는 수많은 기사들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이 영화는 쏙 빠져있다. 그러나 오버 더 레인보우 역시 장진영이 비중있는 역할로 분했던, 따라서 그의 필모그래피에 당연히 등장해야 할, 영화다.

실연한 사람들에게 실연에 대한 유행가 가사가 유난히 크게 다가오듯, 이 가벼운 터치의 영화가 내게 해갈과도 같은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까닭은 내가 그당시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영낙없이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나도 딱 스물 여덟이었고, 그들처럼 나도 이성친구들과 쿨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이제 슬슬 더 늦기 전에 뭔가 멋진 연애를 시작해야 하는건 아닌가라는 생각 내지는 꿈 내지는 압박이 있었다.

영화속 그들처럼 나도 도심 속에서 전문직을 가지고, 가끔은 나름 힙한 곳들을 들락거리면서 소위 말하는 "컨템포러리 컬쳐"를 만끽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는 뭔가 이게 다가 아닐거라는 빈 구석이 있었다. 영화속 그들처럼 나도 내 또래의 여자 -- 이를테면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너무도 말이 잘 통하는 초등학교 동창 -- 을 만나면, 그가 (그 역시 싱글이라는 가정하에) 친구도 될수 있고 그 이상도 될수 있음에서 오는 야릇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도 그런 긴장감을 느꼈을 터이다. 스물 여덟은 우리가 그런 긴장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나이였던 것 같다.

아마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보면 그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물 여덟의 나는 이 영화에 정말이지 처절하게 동감했었다. 영화를 만든 이들은 최대한 가벼운 터치의 러브스토리를 만들려 애썼지만, 영화를 본 나는 젊음과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헤비급 펀치를 얻어맞은 것만큼이나 큰 생각 꾸러미를 지고 극장문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근데 이 영화가 남겨준 그러한 기억들 중 한 4할정도는 장진영의 이미지를 달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여주인공이었으니깐. 사람마다 장진영이라는 이름에서 떠올리는 기억 내지는 추억은 다를 거지만, 나에게 있어서 장진영에 대한 가장 컬러풀한 이미지는 단연 오버 더 레인보우다.

그럤던 장진영이 엊그제 다시 못올 길을 갔다. 내 젊은 날의 기억중 자못 큰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인생의 덧없음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줬다고 말하기에는 (분명 이번 일이 그러한 것들을 사무치게 일깨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반적이고 범생이스럽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느낌의 크기가 작지 않다. 최진실, 이은주 때랑은, 적어도 내겐, 많이 다르다.

헌데 또 너무나 야속한게,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어김없이 바삐 돌아간다. 사람들은 여배우 장진영의 사망 소식에 짧은 충격과 애틋함을 느끼지만, 이내 일상이 잡아끄는 무지막지한 힘에 굴복한 나머지 어제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 경기 결과를 체크하고 삼성전자 주가와 경제 동향을 보며 친구들과의 저녁약속을 잡는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가 그토록 호들갑을 떨어댔던 장진영씨의 시한부 인생과 사실은 남아있는 시간만 아주 약간씩 다를 뿐 기본적으로 똑같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장진영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과 사뭇 다른 인생이었다고 여기고 연민의 정을 느낀다. 왜? 우리가 죽을 날짜를 정확히 몰라서다. 근데 또 사실 이건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죽을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안다면 인생을 단 1분 1초라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더 들지만, 내게도 일상의 잡아끄는 힘이 만만치 않다. 장진영씨, 부디 무지개 너머 (오버 더 레인보우) 좋은 곳으로 가셨길 빈다. 오랜만에 블로깅한 글 치고는 좀 무겁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