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영어


요새 내가 아는 L모양이 (이건 아줌마도 "양"이라는 호칭을 달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임) 영어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아무래도 조직이 글로벌 컴퍼니의 일부다 보니 이래저래 영어를 쓸 일이 많은데, 보아하니 회의를 들어가도 본인의 뛰어난 직업적 능력과는 달리 본의아닌 과묵함 때문에 마치 투명한 셀로판지 취급을 당할 때가 있는가보다. 그도 그럴것이,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debate(토론)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받아온 이들과 회의를 해보면, 인정사정 안보고 완전 속사포처럼 의견들을 쏘아대는지라, 추운 겨울날 오래된 오토바이 발동 거는것마냥 영어가 더듬더듬 거칠게 나오는 사람에게는 끼어들 틈이 좀체로 주어지질 않는다.

가장 억울한 순간은 직업적인 능력에서는 "그들"을 훨씬 앞서면서도 단순히 언어에서 딸려서 그 능력을 100% 인정받지 못하고 주도권을 빼앗길 때가 아닐까.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서재응과 김병현이 단순히 공을 못 던져서 한국으로 다시 왔겠나. 코칭스태프나 동료들과의 "말"이 한국어처럼 유연하지 못했고, 그런 것들이 "적응 실패"로 이어져서 돌아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때론 업적만큼이나 설명과 변명도 중요한 것 같다.

도대체 왜 우리가 영어때문에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어야 하나? 그건 당연히 역사에는 힘의 균형이란게 있는 거고, 지금 힘의 균형은 미국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만일 징기스칸이 천하 통일을 유지했다면 우리는 지금 몽고어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을 것이다. ("TOMIC시험 점수가 안나와서 고민이야.. 울란바토르 대학 가려면 800점 이상은 나와줘야 하는데..") 국채를 시도때도없이 발행해서 외채가 수백조 달러에 이르러도 그건 그냥 "숫자"에 불과한 나라, 10년에 한번 정도는 힘없는 한 나라를 지목해서 폭탄을 벌떼처럼 퍼붓고서라도 자국의 군수산업을 일으키지만, 정작 억울한 그 나라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들리지 못하고 오히려 폭탄을 퍼부은 나라의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타는 나라... 바로 이런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의 지식산업 분야에서 영어를 "억울하지만" 제껴놀 수 없는 거다. 좀더 시야를 넓혀보면 "힘의 균형"은 지방 경제 활성화를 기대한 KTX가 뚫리자마자 오히려 천안사람들까지 와서 강남의 백화점이 더 붐비는 현상을 이해하게 해 주는,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유용하게 쓰이는 틀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 영어 그거 어떻게 해야 하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과감함이다. 예컨대 브라질 사람들,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영어를 못하지만 그들은 쉽게 미국인과 친구가 된다. 생김새가 비슷해서일까,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일까? 그들은 말이 되든 말든 적극적으로 영어를 "해 댄다". 근데 한국사람은 혹시나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서인지 너무 소극적이고 수그러든다. 아예 목소리 볼륨 자체가 작아지는 경우가 많다. 영어가 늘어서 미국사람과 대화하는게 아니라 미국사람과 대화하다보면 영어가 느는 건데도 말이다.

두번째는 돈을 굉장히 많이 벌어서, 돈 벌기 위한 영어가 아닌 돈 쓰기 위한 영어를 구사하면 된다. 많은 돈을 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적확한 영어 구사의 필요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잘도 알아듣는다. 그렇지 않으면 기가막힌 통역을 샴 쌍둥이마냥 붙이고 다니면 되는거고. 근데 내가 아쉬운 입장,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면 그들보다 어쩌면 더 영어를 잘 해서, 그들을 설득해 와야 하는 거니깐, 이게 쉽지 않은 거다. 돈 쓰는 영어만 해도 되는 사람이 되면, 영어의 압박에서 꽤나 자유로와질 수 있다.

참고로 난 개인적으로 두번째 방법을 훨씬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