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참여해본 도메인 경매, 조심해야 할 점들

인터넷 도메인은 현실 세계로 치면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도메인" 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지역이나 땅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현실 세계의 땅과 마찬가지로, 도메인 역시 희소성을 갖는다. 시베리아쪽에 가면 지금도 쉽게 살 수 있는 땅이 널려 있지만 사람들은 그 땅을 안사고 명동 파스쿠치 땅에 욕심을 내는 것처럼, 도메인 역시 지금도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간단한 보통명사로 이루어진 도메인명에 더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요새는 괜찮다 싶은 도메인 명은 거의다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어서, 투자의 개념으로 돈을 좀 내고서 해당 도메인을 구매하는게 차라리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은 것 같다. 도메인 경매 사이트를 잘 찾아보면 썩 괜찮은 도메인들이 썩 괜찮은 가격에 나와 있다. 물론 여기도 거의 대부분의 도메인들은 나와 상관없는 이상한 것들이지만, 검색을 해보면 괜찮은 "물건"들을 볼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청담동에 스튜디오들 많지 않나? 도메인 경매 사이트중 하나인 Sedo에서 chungdam을 쳐보면 chungdamstudio.com이라는 기억하기 좋은 도메인을 500유로 정도에 살 수 있다. (네고를 잘 하면 더 싸게 살 수도 있고).


하지만 도메인 경매 사이트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말 그대로 경매이기 때문에, 낙찰을 받고 나면 낙장불입 상태가 된다. 따라서 아무 생각없이 오퍼를 내면 안된다. 오퍼를 내서 만일 낙찰이 되면 영락없이 그 도메인을 구매해야지, 안그러면 바로 소송감이 된다. 그러니 생각없이, 또는 장난으로 유명 도메인에 100만불, 이렇게 써넣다간 낭패를 볼 것이다.

나도 얼마전에 Sedo에서 "경험삼아" 도메인을 사본적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경험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대략 2000불 선에서 오퍼를 내었는데 (그렇게 좋은 도메인도 아니었고, 아마 이 도메인을 개인적으로 쓸일은 없을것 같다) 낙찰이 된 것이다. 근데 그때를 전후해서 해외출장과 휴가가 있어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도메인 판매자가 국제 소송을 건다는둥, (Sedo에 등록된 내 개인 프로파일을 이용해서) 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는 둥 별의별 말을 하며 난리를 치는 거다. 검색엔진의 발달로 인해, 누가 나를 음해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매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만 치면 내 페이스북 계정이 검색되서 나오고, 내 페이스북에는 내 친구들이 바로 노출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도 기분이 나빠져서 험하게 나갈까 하다가, 결정적으로 그친구와 달리 나는 "바쁘다"는 걸 깨닫고, 얼른 2000불을 송금해 주었다. 물론 내가 낙찰받은 도메인이니 내가 당연히 구매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아직까지 주인 없는 도메인을 찾기 위해서 너무 고민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의 도메인을 Sedo등을 통해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다만 한번 낙찰받으면 반드시 도메인을 구매해야 한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대단한 한국"을 넘어서, "여유있는 한국"으로

여유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중 하나는, 자기에게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서 허허 웃으면서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다. 직장 상사가 똑같이 "자네는 왜 늘 그모양인가?" 라고 말할때, 당신이 만일 절박한 사람이라면 직장 상사의 부두인형을 집에 갖다놓고 바늘을 다리 사이에 박아가며 저주를 퍼부을 것이지만, 당신이 한 수백억 갖고있고 재미로 직장생활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있을까 의심되지만) 그냥 허허, 웃고 넘어갈 것이다.

비슷한 얘기가 민족에도 어느정도 적용되는 것 같다. 미국인들은 전세계인들이 자신들을 조롱거리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진지하게 반성(?)을 안하고, 그 농담에 같이 동참한다. 근데 베트남이나 대만 사람들에게 그들의 국가를 놀리는 농담을 하면 당장 그 자리에서 기분나빠 하진 않더라도 사뭇 정색을 하거나 분위기가 싸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과 얘기를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야, 진짜 한국사람 대단하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가 맞다며 동조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는 농담조로 말하길 도대체 너네 한국사람은 왜 그렇게 자신들을 위대하게 여기냐고 했다. 음, 우리가 그랬었나? 늘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고 한맺힌 삶을 살아온 사람들 아니었나? 세월이 흘러서 한국 사람들이 좀 변했나보다. 중산층에 갓 편입한 사람들이 틈만 나면 자기집 어떻게 산다고 자랑하고 싶어하듯, 우리나라 역시 짧은 시간내에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경험한 나머지 틈만 나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 대견히 여기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대견히 여기는 것까지는 좋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에 절대 너그럽지 못하다. 얼마전 모 가수의 예는 그걸 단적으로 보여준 케이스지만, 그 전에도 그런 사례는 많았다. 중국 친구들이 티벳 두둔한걸 괘씸히 여겨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 하는거 보면서 왠 오바질? 그랬었는데, 어떤 뉴스든지 나라밖에서 접하면 더 심각해 보인다는 걸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사실 그렇게 많이 다른 건 아닌것 같다. 위에서 말한대로 우리의 잘못은 아니고, 우리가 아직 여유 없는게 잘못이다. 여유를 좀더 가져서, 앞으론 박근혜 발끈해 하는 일이 좀 적었으면 좋겠다. 한국, 대단한 나라라고 다들 많이 인정해 줬지 않나. 그러니 이제 대단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대단한 한국"을 넘어서 "여유있는 한국"으로 갔으면 싶다.


장진영, 오버 더 레인보우

사람들은 청연과 국화꽃 향기를 얘기하지만, 내게 있어서 배우 장진영의 매력을 발견했던 (이라고 쓰고 장진영이 참 예쁜 여자라고 느꼈던 이라고 읽는다^^) 첫번째 영화는 "오버 더 레인보우"였다. 장진영의 사망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를 뒤돌아보는 수많은 기사들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이 영화는 쏙 빠져있다. 그러나 오버 더 레인보우 역시 장진영이 비중있는 역할로 분했던, 따라서 그의 필모그래피에 당연히 등장해야 할, 영화다.

실연한 사람들에게 실연에 대한 유행가 가사가 유난히 크게 다가오듯, 이 가벼운 터치의 영화가 내게 해갈과도 같은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까닭은 내가 그당시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영낙없이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나도 딱 스물 여덟이었고, 그들처럼 나도 이성친구들과 쿨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이제 슬슬 더 늦기 전에 뭔가 멋진 연애를 시작해야 하는건 아닌가라는 생각 내지는 꿈 내지는 압박이 있었다.

영화속 그들처럼 나도 도심 속에서 전문직을 가지고, 가끔은 나름 힙한 곳들을 들락거리면서 소위 말하는 "컨템포러리 컬쳐"를 만끽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는 뭔가 이게 다가 아닐거라는 빈 구석이 있었다. 영화속 그들처럼 나도 내 또래의 여자 -- 이를테면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너무도 말이 잘 통하는 초등학교 동창 -- 을 만나면, 그가 (그 역시 싱글이라는 가정하에) 친구도 될수 있고 그 이상도 될수 있음에서 오는 야릇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도 그런 긴장감을 느꼈을 터이다. 스물 여덟은 우리가 그런 긴장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나이였던 것 같다.

아마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보면 그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물 여덟의 나는 이 영화에 정말이지 처절하게 동감했었다. 영화를 만든 이들은 최대한 가벼운 터치의 러브스토리를 만들려 애썼지만, 영화를 본 나는 젊음과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헤비급 펀치를 얻어맞은 것만큼이나 큰 생각 꾸러미를 지고 극장문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근데 이 영화가 남겨준 그러한 기억들 중 한 4할정도는 장진영의 이미지를 달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여주인공이었으니깐. 사람마다 장진영이라는 이름에서 떠올리는 기억 내지는 추억은 다를 거지만, 나에게 있어서 장진영에 대한 가장 컬러풀한 이미지는 단연 오버 더 레인보우다.

그럤던 장진영이 엊그제 다시 못올 길을 갔다. 내 젊은 날의 기억중 자못 큰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인생의 덧없음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줬다고 말하기에는 (분명 이번 일이 그러한 것들을 사무치게 일깨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반적이고 범생이스럽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느낌의 크기가 작지 않다. 최진실, 이은주 때랑은, 적어도 내겐, 많이 다르다.

헌데 또 너무나 야속한게,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어김없이 바삐 돌아간다. 사람들은 여배우 장진영의 사망 소식에 짧은 충격과 애틋함을 느끼지만, 이내 일상이 잡아끄는 무지막지한 힘에 굴복한 나머지 어제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 경기 결과를 체크하고 삼성전자 주가와 경제 동향을 보며 친구들과의 저녁약속을 잡는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가 그토록 호들갑을 떨어댔던 장진영씨의 시한부 인생과 사실은 남아있는 시간만 아주 약간씩 다를 뿐 기본적으로 똑같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장진영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과 사뭇 다른 인생이었다고 여기고 연민의 정을 느낀다. 왜? 우리가 죽을 날짜를 정확히 몰라서다. 근데 또 사실 이건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죽을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안다면 인생을 단 1분 1초라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더 들지만, 내게도 일상의 잡아끄는 힘이 만만치 않다. 장진영씨, 부디 무지개 너머 (오버 더 레인보우) 좋은 곳으로 가셨길 빈다. 오랜만에 블로깅한 글 치고는 좀 무겁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