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이야기

처음에는 구글 캘린더에 버그가 생긴 줄 알았다. "벌써 7월이라고? 그럴리가 없어!" 지난 4월, 5월, 6월이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무지 알 방도가 없다.

지난 4월부터 블로거닷컴의 메인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텍스트큐브 통합 공지 시점을 전후로, 기존에 블로거 일을 하던 미국인 프로덕트 매니저 두명의 신상에 변화가 생기면서 내가 블로거닷컴이라는 작지 않은 서비스를 덜컥 떠맡게 된 것이다. 엔지니어는 전세계에 걸쳐 수십명이 있지만, 프로덕트 매니저는 고작 나 한명이다. 그러다보니 온갖 크고작은 이슈들이 일단 다 내게로 오는데, 가히 매일매일이 이메일과의 전쟁이다.

블로거닷컴은 1998년에 처음 만들어진 "할아버지뻘 서비스"다. 그러다보니 한국 유저들의 눈높이로 보면 쉽게 용서가 안되는 태고적 유저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물론 해외 사용자들은 블로거의 유저 인터페이스에 대해서 한국인들만큼 힘들어 하진 않는다. 심지어 믿기 어렵겠지만 미국인들 중에는 가장 사용하기 편한 블로그 서비스가 블로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낡은 툴이건만 사용자는 놀랍게도 굉장히 많다. 트래픽이나 사용자수 면에서 단연 전세계 1위 블로그 서비스이다 (2위는 워드프레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하루 평균 트래픽은 우리나라 최대 포털의 모든 페이지뷰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가 안 멈추고 돌아가게끔 하는 것만도 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매일매일 전세계 수십개국에서 온갖 이슈들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칠레에서 블로거닷컴 접속이 잘 안된다든지,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블로거닷컴 기반의) 블로그가 정치적 이유로 막혔다든지, 이런 식이다.

그동안 왜이리 블로거닷컴에 기능적인 발전이 없었는지를 잘 몰랐는데, 직접 운영을 해보니 단순히 서비스가 안 죽고 돌아가게끔 하는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쉽게 말해 서비스의 규모가 발전의 발목을 잡아온 셈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핑계이고, 블로거닷컴은 앞으로 한참 더 좋아져야만 한다. 예전에는 블로거닷컴이 말도 안되게 후지다고 쉽게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러한 불평이 고스란히 내 책임이 되는 셈이다. 다행히 최근들어 기능 추가가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좋은 소식 몇 개가 기다리고 있다.

구글에는 서치, 광고, 맵스, 엔터프라이즈, 유튜브 등과 함께 "앱스(Apps)"라는 부문이 있다. 블로거 역시 우리가 자주 쓰는 서비스인 지메일, 캘린더, Docs, Sites, 그룹스, 버즈(Buzz) 등과 함께 앱스 그룹에 속해 있다. 구글 앱스 그룹에서 한국인 프로덕트 매니저는 아직까지 나 한명인데, 영어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글로벌 팀과 뒤섞여서, 때로는 그들을 리딩해 가며 일을 해나가려니 여간 역량 부족을 절감하는게 아니다. 일례로 블로거닷컴 공식 블로그와 블로거의 Labs 버전인 "Blogger in Draft"의 공식 블로그에 글을 계속 포스팅하고 있는데 (엔지니어 이름으로 나가는 글들도 상당부분 내가 작성한다), 원어민들이 보기에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을지 늘 조마조마하다. 그나마 웹 2.0 아시아에서 영문 블로깅을 했던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개의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지는 웹 업계에서, 블로그는 핫 이슈는커녕 고전적인 테마에 속할 정도이다. 십 수년된 서비스를 개선시키는 일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일에 비해 훨씬 덜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구글 본사의 주요 서비스중 하나를 맡게 되었다는 개인 신상의 변화는 충분히 도전의식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영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할 것이고, 쏟아지는 일들 가운데에서 정신을 차리려면 좀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고 성장하게 될 것 같다.

블로거닷컴 일만 해도 정신이 없어서 텍스트큐브는 솔직히 거의 신경도 못 썼다. 서비스 통합 결정에 대해서, 그리고 그 결정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비판과 질책이 있었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비판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내가 속한 조직에는 글로벌 컴퍼니로써의 확고한 PR 정책이 있다는 점 또한 존중한다. 참고로 이번일로 인해 구글 코리아가 많은 비판을 받은것 같은데, 서비스 통합 결정은 구글 코리아뿐 아니라 구글 본사에서도 깊이 간여한 결정이었다. 아무튼 텍스트큐브 관련해서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해볼 계획이다.

어쨌든, 나는 홍보와 PR을 담당하는 사람도 아니고, 구글이라는 회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저 엔지니어들과 함께 좋은 기능을 연구하고 추가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일에 충실하려 한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블로거닷컴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오기 전보다 더 좋은 서비스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미션으로 삼고 있는 일은 한국의 앞선 웹 기술을 해외로 전파하고 소개함으로써, 한국 웹 업계의 레벨을 높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Startup Nation같은 책에 열광하고, 영문으로 한국 벤처들을 소개하는 일도 했었고, 오픈웹 아시아긱스 온어 플레인 같은 행사를 주최하느라 분주히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조금은 논리의 비약인지도 모르겠으나) 한국의 엔지니어들과 더불어 블로거닷컴이라는 글로벌 서비스를 조금이라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서 한국 웹에 대한 구글 안팎의 평가를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미션의 연장으로써 약간의 의미부여를 할 수도 있지 않나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