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가리 없는 우수생들

유럽에서는 대학교까지의 모든 교육이 무료라는데도 대학에 안 가고 취직을 하는 학생들이 더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동혁이형이 샤우팅을 외치지 않을수 없을 정도로 대학 등록금이 세계 1-2위 수준으로 높은데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생의 절대 다수가 대학에 진학한다. 어쩌면 우리나라 대학 교육이 무료가 될때가 바로 우리나라 대학 입시가 지금처럼 살인적이지 않게 될 때일지도 모른다. 마치 루이비통 가방이 선망의 대상인 것은 그것이 무척 비싸기 때문인 것처럼.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밤 9~10시까지 전교생이 같이 학교에 모여서 공부를 한다. 물론 그게 끝나고 나면 교문 앞에는 학원 차가 와있다. 이건 정말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진풍경인데, 문제는 한국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이런 것을 당연시하고 만다는 거다. 만약 학생들을 집에 일찍 보내는 학교가 나온다면, 오히려 학부모들의 원성을 살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이 이처럼 힘들게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보통 1-2년은 마치 시합이 끝나고 긴장이 풀어진 선수들처럼 방황을 하게 마련이다. 그건 바로 그때까지의 그들의 인생 목표가 대학 진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생 목표라는 건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에 열정적이고, 따라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건지, 이런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건데 누구도 고등학교때 그런 고민을 할 겨를이 없다.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청소년기의 인생에 대한 고민은 "일단 대학부터" 라는 논리하에 너무도 쉽게 저쪽 구석으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그 결과 어떤 대학교에 갈지는 너무도 잘 아는데 어떤 과를 전공하고 싶은지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과를 정해서 대학에 오고 나도, 인생에서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할수없이 자기가 계속 해온것 - 공부 - 에 다시금 매달린다. 별로 쉴 겨를도 없이 대학교 1학년부터 참고서와 수험서를 들고 도서관으로 다시 들어가서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대학에 가는 것은 그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인 거고, 심지어 졸업식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가 "시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대학교 자체가 목표가 되어 버렸다는 건 말이 안된다. (이건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가지고 어떤 가치와 국부를 창출하는지가 문제인데, 대부분 영어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마치 우리가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멋진 집을 짓는 일이라고 하면,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부터 그려야 하는데 그런건 하나도 없이 벽돌 빨리 쌓는 일에만 도사가 된 격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대학 교육을 마치고 나온 소위 "인재들"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스펙에서 뒤떨어지지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야성이 부족하다. 속된 말로 매가리가 없다고 할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들은 매우 서글서글한것 같지만, 진짜로 마음이 넓고 서글서글한 건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를테면 한 7세경?) 그들은 다른 사람을 밟고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왔고, 그러다 보니 그들은 학업을 벗어나도 끊임없이 남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집, 자동차, 명품 액세서리,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를 비교하는 의식은 한국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맞닿아 있다. 심지어 양복을 입는 모 대기업의 초년생 사원들이 서로의 혁대 버클이 얼마짜리라고 비교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서, 서로 가진것 한갖 몇푼을 서로 비교하는 것을 보면 누가 더 오줌을 멀리 싸는지 경쟁하는 애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저 불쌍해 보일 따름이다.

그들은 3학점짜리 벤처창업 과목은 한 시간도 빼먹지 않고 듣지만, 정작 벤처를 창업하거나 조인할 마음은 별로 없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친구들과 이야기할때 그들이 잘 들어보지 못한 "듣보잡" 회사에 다니기 싫은 것일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남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수술실 집도의처럼 예리하게 문제점을 발라내고 비평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세상에 의미있는 공헌을 한게 별로 없다는 생각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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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Nation 이라는, 이스라엘의 벤처 창업 세계를 다룬 책이 있다. 정말 읽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그 책에 보면 이스라엘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대학생들이 하버드, 예일등 아이비 리그 스쿨을 놓고 고민할때,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어떤 엘리트 부대에 갈까를 놓고 고민한다고 한다. 엘리트 부대에 가서 빡센 교육을 받고 나서, 그들은 바로 실전에 투입된다. 그리고 그들은 소대장이 되고, 실전에 투입되어 그들의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서 부대원들이 살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극단적 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아무런 매뉴얼 없이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를테면 인질을 구하려고 헬기를 파견했지만 주변에 잡풀이 많아서 헬기가 착륙을 못하는 상황이 닥치자,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헬기를 45도로 기울여 꼬리날개로 잡목을 제초하라는 결정을 내리는 식이다. 이러한 군대 생활을 마치고 나면 한 스물 세살쯤 되는데, 많은 이스라엘 청년들은 그때 비로소 대학교에 입학한다고 한다. 이들은 우리나라 대학교 신입생에 비해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더 성숙할 것이다.

좋든 싫든 지금은 글로벌 시대고, 우리 후배들은 이제 그들과 경쟁해야 한다. 부디 선배들과는 달리 우리 후배님들은 "매가리 없는 우수생"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