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플러스 이야기

(예전에 비행기 안에서 썼던 긴 글이 잠자고 있어서, 아까운 마음에 업데이트 & 포스팅).

지금은 회사를 나와서 스타트업 준비를 하고 있지만, 불과 두세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구글+ 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던 블로거팀은 구글+의 핵심적인 기능을 개발한 팀은 아니었지만, 구글+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될때 비교적 소수의 인원이 꾸려질 때부터 프로젝트로 편입이 되는 바람에 나는 구글+ 프로젝트를 아주 초기부터 보아올 수 있었다.

아직 구글+가 궁극적으로 성공할 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곁에서 본 프로젝트의 시작과 진행 과정은 흥미진진함 그 자체였다. 몇가지 생각나는 일화들이 있다.

1. 어스퀘이크

2010년 SXSW에 참석하고 나서 구글 본사 46번 건물로 출근을 했다. 아직은 미국 본사로 옮기기 전이라 출장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평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내가 임시로 쓰던 자리에 갔는데 누군가가 내 의자를 쓰고 다른 자리에 놓았는지 다른 사람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냥 혼잣말로 누군가 내 의자를 바꾸어 놓았다고 중얼거렸더니, 그걸 들은 엔지니어링 매니저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지금 그거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That should be the least of your worries”)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아침부터 공기가 무거웠던 이유는 시니어 VP (부사장) 중 한명인 얼스 회엘즐 (이분 이름 한글로 참 쓰기 힘들다. 실제로는 “우얼즈”에 가깝게 발음함) 의 이메일 때문이었다. 장문의 이메일은 구글의 소셜 비즈니스에 대한 것이었다. 구글이 소셜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게 아니었으므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내용은 조직 개편에 대한 것이었다. 갑자기 소셜 분야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차출”되어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프로젝트명은 에머랄드 씨 (Emerald Sea) 였다.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각 팀에서 두세명씩 차출되어 나가기 시작했고 우리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갑자기 무엇을 만들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백명이 넘는 사람들로 팀이 꾸려진 것.

사람들은 여러가지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구글러들은 정말 똑똑한 사람들인 동시에, 종종 가장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무조건 사람부터 넣느냐고 일이 되느냐, 프로덕트에 대한 비전 수립이 먼저 되고 그다음에 코딩에 들어가야지 엔지니어들부터 먼저 모아놓는다고 일이 되느냐 등등. 이때 하도 조직이 혼란기를 겼었던 지라, 사람들이 이것의 시발점이 된 얼스의 이메일을 가르켜 "지진(earthquake)"와 유사한 단어를 만들어내어 “Ursquake” 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메일을 쓴 사람이 얼스였을 뿐이지 이 모든 변화가 얼스라는 한명의 부사장이 시작하고 주도한 것은 아니었고 창업자 레벨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래리 페이지는 지금도 구글+를 구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중 하나로 여기고 있고,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 버즈 시절부터 직접 드라이브하면서 정말 큰 관심을 보여 왔었다. 그당시 46번 건물에 가면 저녁 늦은 시간에도 창업자들과 임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광경을 거의 매일 볼수 있었다. 재산만 수조원 이상에 이르는 구글의 창업자들과 임원들이 십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치열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가히 미스테리중 하나.

사람만 몰아넣어서 일이 되냐고 할때마다 돌아왔던 답변은, 그게 구글의 전통적인 방법이라는 거였다. 똑똑한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그들에게 정말 큰 챌런지를 부여한 다음, 그들이 그 챌린지를 극복하도록 하는 거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 말은 반 이상 맞는 셈이 되었다. 기억컨대 지금 구글+ 서비스에서 돌아가고 있는 핵심적인 뼈대 기능은 놀랍게도 이미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나서 100일 안에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버그는 많았지만). 그리고 역시 구글의 전통적인 방법대로 내부 테스트 (dogfood) 를 통해서 피드백을 아주 일찍부터 받기 시작했다. 구글+팀은 마치 스타트업처럼 움직였고, 구글의 다른 팀과는 사뭇 다르게, 매우 빨리 운영되었다.

똑똑한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큰 문제를 안겨주고 그들이 그 구덩이에서 헤어나오도록 하는건, 참 잔인한 방법이지만 때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2. 포멀 프라이데이 (formal Friday)

구글+의 정식 서비스 론칭이 다가올수록 개발팀은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다. 론치 일정을 앞두고 구글+팀은 포멀 프라이데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서비스 출시일 전까지 금요일마다 팀의 주요 멤버들은 양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제도였다. 잘 알려진대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매우 캐주얼한 복장을 입는것이 관례이고 따라서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것은 특수한 일이 아니면 의아 내지는 심지어 민망한 (embarassing) 일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포멀 프라이데이는 금요일마다 양복을 입는 것이 민망하게 느껴져서라도 서비스 출시 기일을 어기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 내지는 압력(?)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취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포멀 프라이데이에서도 유머감각을 잊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서 배우는 점 중의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 이에 반해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종종 너무 절박하게 생각하고, 표정이 굳어있을 때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포멀 프라이데이를 이용해서 턱시도, 인도 전통의상 (포멀한 옷이라고 했지 굳이 양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또는 영화 "마스크"에서 짐 캐리가 입고나왔던 샛노란 양복을 굳이 사서 입고 오기도 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나중에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추억거리로 자리잡았음은 물론이다.

조직의 팀웍은 해당 조직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유하기 힘든 독특한 (그리고 때로는 유머있는) 문화를 공유할 때 더욱더 강화되는것 같다.

3. ESPS, All hands demo

구글+팀은 다른 구글 팀과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거의 모든 결정이 탑에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탑다운 컬쳐였다. 마치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가 거의 모든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렸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장단점이 있지만, 대체로 이런 구조였기 때문에 불가능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서비스를 론치할 수 있었다는 평이 더 많았다.

대신 결정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 있으면 ESPS (Emerald Sea Product Strategy) 라고 불리는 미팅에 아젠다를 들고 가면 그 미팅에서 대부분 5분내에 결정이 나곤 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지는 만큼 그 미팅의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인텐시브했다. 사람들이 말을 어찌나 속사포처럼 빨리 해대는지, 마치 기관총으로 말을 서로 쏘아대는 듯했다. 말을 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자신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된 논리와 이유를 대야지 (그것도 대략 0.2초 안에), 그렇지 않으면 바로 박살이 나는 분위기. 서로 인격이 상하는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스스로 배틀에 졌다는 자괴감과 더불어 자기 뒤에 있는 팀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차원에서의 "박살"인 것이다.

ESPS가 일부의 사람들만 참여하는 닫힌 회의라면 All hands demo는 수백명의 팀들이 참여하는 열린 미팅이었다. 이 미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개발중인 기능의 데모였다. 대략 5-10개정도 팀들이 출시가 임박한 기능들을 5분 이내로 데모하는 것인데, 멋진 기능을 데모할 때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칭찬하고 같이 흥분하고 박수와 환성을 보냈다. 반면 의도치 않게 버그가 날때면 진행자들의 위트와 더불어 청중을 한번 웃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지금도 가장 그리운 구글의 문화중 하나는 이런 긱(geek)들의 데모 문화다. 끝도없이 전략과 계획의 논의를 펼치는 회의는 지겹고 따분하고 재미없다. 기술 중심의 회사라면 거의 모든 회의에 있어서 회의 = 데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4. 빅 군도트라

구글+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구글의 소셜 시대는 빅 이전과 빅 이후로 나뉜다는 말도 있다. 구글+ 팀을 이끌고 있는 수석부사장 (예를 들어 삼성으로 치면 계열사 사장쯤에 해당) 빅 건도트라에 대해서는 많은 한국분들이 모르고 있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우선 굉장한 쇼맨십을 갖춘 사람이다.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가수들과 래퍼들의 전화목록이 저장되어 있고 그들과 종종 통화를 주고받는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도 미니밴이 아닌 아우디 R8 스파이더 오픈카를 타고 가며, 또한 미 전역에 방송된 메르세데스 벤츠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총기 소지자임을 구글+ 포스트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마초적 성향을 가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매우 컬러풀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다.

인도 출신이면서도 미국의 주류사회를 휘집고 다니는 이 사람을 보면서 왜 한국사람들중에는 저런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 봤었다. 한중일 아시안들은 비교적 모범적이고 말썽 안 일으키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불평 없이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대부분이 아닐까. 좀더 (좋은 의미로) 미국 주류사회에서 사고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건 아닌지.

하지만 빅에 대해서 가장 경이로운 점은 말을 너무도 잘한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말하는 것만 따로 연습하나 싶을 정도. 그 똑똑하고 자기주장 강한 구글러들도 빅이 10분만 대중 스피치를 하고 나면 다들 반 좀비상태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기업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말솜씨가 저정도는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다.

일화 하나만 소개하면, 구글+가 공식적으로 오픈하기 마지막 주 전체 회의때 일이었다. 데모 세션이 끝나고 빅이 드디어 사람들 앞에 섰다. 우린 모두 그가 이번주에는 도대체 어떤 10분 메시지로 그의 군사들을 또다시 반 좀비로 만들지 궁금해 했고, 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반적인 메시지 끝에 마지막으로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면서 말을 마무리했다. 오늘아침 구글러중 한명이 자기를 찾아와서 할아버지때부터 집안에 내려오던, 미국 내전(civil war) 때 발행된 주화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 주화에는 바람에 맞서는 황소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곧 용기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 주화를 지니고 바람에 맞서서 용기를 가져라, 구글+의 론치에 행운을 빈다, 뭐 이런 어찌보면 정말 별거아닌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술과도 같은 그의 화법을 통해서 전달된 그 이야기는 결국 방안에 있던 한두명의 뺨에 눈물을 흐르게 했다.

+  +  + 

구글+는 잘될까? 사실 이제 구글+ 팀도 아니고 해서 구글+가 궁극적으로 잘 될건지 아닐지에 대해서 예전만큼 관심을 갖고 있진 않다. 솔직히 고백컨대 회사를 나오고 나자마자부터 개인적으로는 구글+를 많이 안쓰게 된다. 친한 사람들이 99% 페이스북에 있고, 동일한 소셜 그래프가 구글+로 그대로 전이 내지는 복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것 같다. 페이스북은 싫어도 쓰게 되는데 구글+는 그렇지 않다는게 가장 큰 차이인 듯.

구글+가 가진 가장 큰 (어쩌면 유일한?) 장점은 구글이라는 서비스를 깔고 있다는 것. 따라서 구글+는 구글 전체에 소셜 기능을 입혀주는 레이어 내지는 파운데이션이 되어야 하고 한창 그러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마치 마이크로소프트와 스카이프의 관계일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스카이프를 비싼 가격에 인수한 것은 스카이프의 기능이 다른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이베이도 그런 비슷한 비전을 가졌을 테지만 (바이어와 셀러들이 스카이프로 통화하면서 가격 흥정과 소비자 상담을 하는 그림?) 결국 스카이프는 이베이에 녹아들어가지 못했고 따라서 손해를 보면서 매각되었던 전례가 있다. 아무튼 구글+도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는 구글의 각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융합되어야 하며, 구글+팀은 이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큰 변화가 없는한 구글의 모든 서비스에 구글+가 녹아들어갈 것임은 거의 100% 확실하다고 보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