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적 사고방식

올해 HBS에 입학해서 이번 가을학기부터 들어가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 후배가 커리어 조언을 구했다. MBA도 붙었지만, 문제는 스타트업 경험도 하고 싶다는 것.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은데서 인턴십을 하는게 좋겠냐, 아니면 졸업후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스타트업에 가서 일을 하는게 좋겠냐, 몇가지 옵션을 가지고 와서 물어봤다.

나는 "아마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말도 안되게 이상한 조언을 줄테니 내 말을 귀담아 듣지는 말라"는 경고 하에, 나같으면 아마 HBS를 한학기만 다니고 때려치고 창업을 할거 같다고 얘기를 했다. 등록금의 1/4 만 내고서도 레주메에 들어갈 수 있는 이력 한줄과 하버드라는 브랜드, 그리고 alumni 이메일 주소를 가질수 있고, 게다가 운이 좋으면 평생지기 친구들도 몇명 사귈수 있으니, 얼마나 남는 장사냐, 뭣하러 학비를 전액 내느냐는 설명과 함께. 그 말이 끝나고 약 10초간 어색한 정적과 함께 각자 식사모드가 이어지게 된것은 물론.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얼마전까지 내가 MBA에 가지 않았던 것을 인생의 큰 후회로 여기고 있었다. GMAT 점수도 운좋게도 좋았고 (역시 한국사람은 실력과 상관없이 시험공부에 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음), 다니던 회사에서 스폰서 기회도 찾아왔었는데 왜 MBA를 안했었나.

하지만 요즘 생각은 조금은 다른것 같다. MBA에 가는대신 선택했던 벤처의 경험에 후회는 커녕, 정말 그런 선택을 나도 모르게 할수 있게 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길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범인인 장본인인 노정석 대표에게도 너무 고맙다.

얼마전에 MBA출신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앞으로 2-3년 자금과 인력 운용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2-3년계획이라고?? 나는 지금 당장 3개월 뒤에 회사가 안 망하도록 하는게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 물론 2년뒤, 5년뒤의 꿈이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런 꿈이 너무 강렬하고 비현실적이어서 문제일 지경. 하지만 2년뒤의 자세하고 세밀한 계획은 솔직히 말하면 별로 없다.

MBA들과 이야기 해보면 가끔 그들의 "MBA적 사고방식" 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드러날 때가 있다. 그들은 종종 핵심을 잘 파고드는 질문을 한다. 이 시장의 총 대상 크기는 얼마지요? 경쟁자들이 따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 있는데, 거기에 대한 대비는 무엇인가요? A라는 업종에서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데 (MBA 케이스 스터디때 배웠어요), 그때 이러이러한 사례도 있었지요. 이 업종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나요? 내 생각에 이건 이래서 안될것 같아요.

물론 당연히 맞는 질문들이고, 생각하는 방식에 도움을 준다. 여기서 MBA적 사고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도 세상을 거대하게 바꾸어가고 있는 MBA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지 부시를 포함해서 (이건 농담^^)

다만, 요새 들어서 개인적으로 생각이 조금 바뀐걸 얘기하고 싶은거다. 나는 요새 왜 젊은시절에 더 미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젠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어 가는 사람들은 살짝 미친 사람들, 깨는 인간들인걸 안다. 사업도 모든걸 다 따져서 답이 나와야 하는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모바일 결제시장, 전기자동차 시장을 앞서서 개척해 가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트위터와 페이팔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 시장에 경험이 전혀 없고, 그래서 겁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결제 시장과 전기차 시장에서 혹독하게 고생을 경험했고, 그래서 그 시장이 안될 이유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분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분들은 그동안 데인게 있어서라도 그 시장에 다시금 돈키호테처럼 뛰어들기 힘들 거라는 것을 안다.

나는 교수출신 아버지에게서, 박사학위 받는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자랐다. 형이 학부에서 생물학 공부를 한다음, 경영대학원에 가려고 하자 아버지는 그런 돈버는 학문은 학문 축에도 못 끼인다고 몇달동안 형을 나무란 적이 있다. 말 잘듣는 둘째아들이었던 나는 정해진 코스를 쫓아가는 모범생으로 자랐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서 세상에 나와보니 세상은 미친 사람들이 바꾸어 가더라. 마크 주커버그나 스티브 잡스가 과연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한 사람들은 그런 "똘아이"들이 너무도 이기적으로 만들어 놓은 편협된 세상의 패러다임을 마치 태고적부터 있어왔던 진리인 양 받아들이고 그 비전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밤을 새가며 일한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더라.

평생 살아온 가닥이 있어서, 나는 완전한 삐딱선은 어쩌면 평생 타지 못할것 같다. 누군가 일본인들이 영화 "철도원"에 공감하는 이유가, 그들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빈 역에서 경례를 하는 직업 윤리가 답답하다는 걸 내심 알지만 일본인인 이상 그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평한걸 본 적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정규 고등교육을 마친 우리 한국인들도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인들만의 어떤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20대 초반에 더 미친짓들을 많이 하지 못했던 걸 후회한다. 그리고 나의 자녀들을 정해진 코스를 걸어가게끔 교육시키는게 아닌가 우려한다.

만일 이 글을 어디선가 20대 초반의 사람이 읽는다면 더 늦기전에 미친짓 좀 더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스펙에 대한 꿈보다 제대로 똘아이가 되서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것 하나 만들고, 세상을 굵직하게 바꾸는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다.

또다시 사회 초년병 시기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커리어를 올라가는 과정은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이를테면 탑10 MBA 과정을 나온다는 것은 또다른 문을 하나 여는 셈. 그렇게 문을 하나씩 하나씩 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게 우리의 커리어인데, 그 커리어의 종결점은 뭘까? 그건 바로 자신의 꿈과 재능과 포텐셜을 100% 살리는 것 아닐까? 그렇게 보면 초등학교밖에 안나온 정주영 회장같은 분은 MBA도 없고 박사도 없지만 막바로 거대한 철문 하나 열어제끼고 마지막 퀘스트의 방으로 곧바로 걸어 들어가신 케이스일 것이다.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뻔히 보이는, 그래서 그 문으로 들어가려고 박터진 경쟁이 일어나는 문이 있는가 하면, 미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조그마한 문도 있다. 그들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서 혼자 그 방의 주인이 되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당신 앞에는 지금 어떤 문들이 놓여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