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ant Surprise


배트맨에서 악당 베인 역할을 무게감있게 연기해낸 이가, 얼마전 로맨틱 코미디 "디스 민즈 워"에서 주연을 맡았던 탐 하디라는 것을 알기는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힘들었다. 어차피 배트맨에서는 얼굴의 반이상을 가리고 나오기 때문에 누군지를 알기가 거의 불가능. :) 그리고 이렇게 찾아보다 보니, 그가 워리어 (2011) 에서도 근육질의 MMA 선수로 분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인셉션에도 출연했던 것은, 그 영화가 실은 배트맨 2.5였으니 그닥 놀랄일이 아니었던 거고. :)

왜 어떤 영화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짚어가다 보면 "아, 이 배우가 그때 그 영화에서 xx로 나왔던 바로 그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소소한 즐거움이 가끔 있지 않은가? 누군가 나에 대해서도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래봤자 별거 아닌 일이겠지만서도, 아, 이분이 바로 몇년전에 이런거 했던 분이구나? 이런것 말이다. 반면, 내가 나서서 "내가 몇년도에는 이런 일을 했었고.."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계해야 할 일임을 다시금 새겨본다. 자기 얘기는 자기가 아니라 남이 해주어야 의미를 띄는 거니까.

점점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빨라지고, 따라서 우리는 아이디어와 실행력만 있으면 인생을 송두리째 걸지 않더라도 3년에서 5년 단위로 세상을 한번씩 깜짝깜짝 놀라게 해줄만한 일들을 해낼수 있는, 역사상 거의 최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린 우리만의 인생 필모그래피를 써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엊그제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하는 기사를 하나 봤다. 네이버에서 UI 부사장을 담당하던 조수용님이 멋진 식당을 냈다는 이야기. 직접 같이 부대껴가며 일을 해본적은 없지만, 웹 1.0 시절에 병특을 하던 넥스텔이란 회사에서 이분도 프로젝트를 했기에, 오며가며 일면식이 있는 분이다. 정말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감당하며 인생의 작품들을 하나하나씩 내어가는 모습이 정말이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분이야말로, 만일 뒤늦게 식당 사장으로써의 조수용이란 사람만 알았던 사람이 뒤늦게 "아니, 이분이 네이버의 신사옥을 디자인하고 네이버 초록창을 만든 분이야?" 라는 신선한 놀라움을 갖게끔 만들수 있는 분이다. 하지만 이분만이 아닐 것이다. 우린 모두는 자기 인생의 3년, 5년 단위의 필모그래피를 쓸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