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주로 후회하는 다섯가지

"죽기 전에 후회하는 스물 다섯가지" 류의 책이 그간 많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좀더 짧은 다섯개의 리스트. 원문은 이곳을 참고.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아온 저자가 간추린, 사람들이 보통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다섯가지라고 한다.

1. 다른 사람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는게 아닌, 나 자신에게 보다 충실한 삶을 살수 있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것
2. 죽어라 일만 했던것
3. 내 감정을 보다 솔직히 표현하지 못했던 것
4. 내 친구와 지인들과 좀더 관계를 갖지 못했던 것
5. 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못했던 것


1. I wish I'd had the courage to live a life true to myself, not the life others expected of me.
2. I wish I didn't work so hard.
3. I wish I'd had the courage to express my feelings.
4. I wish I had stayed in touch with my friends.
5. I wish that I had let myself be happier.

내 경우 2번과 4번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요새같은 경우 너무 일에만 몰두해서, 특히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많이 놓치고 있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때 평균값을 따져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 인생의 특정 구간동안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일만 해야 하는 구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그것이 추후의 삶에 여유를 줄수 있는 밑거름이 되서, 인생 전체로써의 평균값을 놓고 보았을때 궁극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성공적으로 해줄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희망이라도 가지려고 한다.

이메일 < 3

모든 이메일을 세 줄 이내로 작성해 보도록 노력할 것. 물론 때로는 세 줄을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메일은 무조건 세줄 이내"라는 원칙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인 노력을 하다 보면 짧게 쓰는데 좋은 훈련이 된다. 그리고 평소에 얼마나 이메일을 불필요하게 장황하게 썼는지를 깨닫게 된다.

Digg의 창업자이자 지금은 구글 벤처스에서 VC로 일하고 있는 케빈 로즈의 경우, 데스크탑에서 보내는 이메일에조차 signature에 "Sent from my iPhone"를 자동으로 붙인다고 한다. 약간의 치팅이지만, 짧은 이메일을 받았을 때 상대방이 좀더 잘 이해해 줄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이메일 치팅을 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가끔 정말 누가봐도 바쁜 사람들에게 이메일 답장이 올때가 있는데 그럴때 보면 끽해야 한두줄일 때가 많다. 하지만 또한 사실 한두줄이면 필요한 말 거의 할수 있기도 하다.


매일 이메일의 홍수에 시달린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경우 자기 자신이 엄청난 양의 이메일을, 그것도 길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때로는 all@)을 CC에 넣어서 보낼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정말 이메일만 하다가 하루가 간다.


이메일 외에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고려할 것. 가끔 모든 것을 이메일로만 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때로는 전화 한통, 미팅 한번, 산책 한번, 구글+ 행아웃 한번이 훨씬 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일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이메일이 안 중요한 건 절대로 아니다. 특히 버추얼 협업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에서 이메일은 갈수록 업무에 있어서 중요해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그래서 나도 우리 팀원들에게 액션이 필요한 이메일의 경우 최장 24시간 내에 액션이 취해져야 한다는 소위 "이메일 협정(email pact)"를 부탁하곤 한다.

하지만 이메일 상에서 토론이 벌어지고 끝도없이 답신이 오가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축구로 치면 끊임없이 미드필드에서 가로로 패스가 오가는 것. 중요한 것은 골을 넣는 것인데 계속 공만 옆으로 돌리고 있으면 공과 선수의 이동거리는 길지만 벡터의 섬은 제로가 된다. 아무도 당신의 조직이 얼마나 서로에게 이메일을 잘 쓰는지로 당신의 조직을 평가하지 않는다. 당신의 조직이 만들어 내는 제품과 서비스, 그것만이 유일한 평가 기준이다. 이메일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의 한가지 방법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절대로 아니다. 

왜 미국 가정들은 도어락을 사용하지 않을까


미국에 와서 가장 불편한 것 중의 하나는 2012년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쇠라는 것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벌써 10년쯤 전부터 도어락 없는 곳이 없었던 것 같은데, 미국에선 사무실이든 아파트든 간에 아직도 노란색 금속 열쇠가 없으면 안되는 곳이 많다. 2012년의 모습이라고 영 믿어지지 않을 정도.

아마 기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스마트 도어락 시스템, 이런것을 도대체 언제부터 들었었던가. 이제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완성도를 신뢰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 미국 가정에서 누구나 한국처럼 번호 방식의 도어락을 쓰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의 습관이나 문화적 차이가 존재해서일 것이다.

스타트업을 한국에서 먼저 해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맞냐, 아니면 처음부터 실리콘밸리로 무작정 건너와서 시작하는게 맞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아마 정답은 없을 거고 회사마다, 사람마다, 업종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아이템은 아예 미국서 시작하거나 해외진출을 반드시 염두에 두는게 맞고, 기술 기반의 회사라면 상대적으로 그런게 덜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던것 같다.

서비스의 경우 한국에서 성공하면 할수록 한국 유저들의 요구사항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어서 해외 진출을 위한 로컬라이제이션이 점점 어려워지는 패러독스를 안고 있지만, 기술 기반의 경우 - 이를테면 비디오 전송시 퀄리티 손실없이 파일 크기만 1/2로 줄여주는 기술이 만일 개발되었다고 하면, 그건 문화 차이라는 요소가 별로 없는거고 따라서 대부분의 팀이 한국에 있고 미국에 한두명만 있어도 된다고 본다.

도어락의 경우는 흥미롭게도 기술과 문화 두 가지가 모두 결합된 비즈니스의 한가지 예인듯 싶다. 기술 자체도 오류에 대한 수용도 (fault tolerance) 가 매우 낮고 -- 자기집 문 밖에서 뭔가 문제가 생겨서 못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 따라서 매우 기술 기반의 아이템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지만, 반면 기술을 극복했다고 해서 문화적으로 아무런 장벽없이 무조건 수용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닌듯 싶다. 따라서 기술의 장벽도, 문화의 장벽도 둘다 넘어야 하는 비즈니스의 예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미국의 이 수많은 문들을 스마트폰과 네트워크에 기반한 전자식 도어락으로 바꿀 것이다. 그리고 그 업체는 도어락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기술뿐 아니라 문화의 장벽 역시 넘은 업체일 것이다.

당신은 곧 당신의 친구들

드랍박스를 만들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가중의 한명이 된 드루 하우스턴이 얼마전에 스탠포드에서 이야기하던중, 이런 얘기를 했다. 창업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중 하나는 자기 친구중에 하나가 Xobni라는 스타트업을 시작해서 1년도 안되어 수백만불의 투자를 받았던 일이라는 것.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같은 대학 기숙사에서 맥주 마시면서 놀던 친구가 수백만불의 VC 투자를 받는 것을 보고, 만약 그 친구가 할수 있다면 나도 할수 있다고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기업들을 주름잡고 있는 분들도 알고보면 카이스트, 서울대 기숙사 선후배들인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르네상스, 산업혁명 등 역사를 바꾸어 놓은 굵직한 혁명들도 알고 보면 한 도시, 지역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즉 멀리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보는 친구들끼리 서로서로 경쟁도 하고 조언도 해주면서 같이 성장하는게 결국 전체적으로 파이를 크게 키워서, 자기 자신역시 자기가 처음에 생각할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될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도 벤처들끼리 자주 모이고 교류를 나누고, 그러는 가운데 서로 건전한 경쟁심도 가지면서 같이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드루 하우스턴이 했던 말중 멋있는 말 하나. "You're the average of 5 closest friends of yours". 당신을 규정하는 것은 곧 당신의 가장 친한 5명의 친구들이 누구냐이다, 뭐 이쯤 될듯 하다. 기업가들이라면 함께 배우고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다른 건전한 기업가들을 자기 주변에 두고 그들과 어울리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창업을 위한 시기

지인 버나드가 진행한 인터뷰 기사 - 망할뻔한 회사를 약 1000억원에 엑싯시킨 벤처 롤러코스터 이야기 - 를 얼마전 흥미롭게 읽었다. 다소 길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 일독을 권한다.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중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창업에 좋은 시기는 두번 있다. 한번은 젊고 가족이 없을때. 당신이 열아홉살이라면 기본적으로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하루에 스무시간씩 일할수 있다. 이때가 창업을 하기 좋은 첫번째 시기다. 두번째는 회사원 생활을 접을 무렵. 통장에 어느정도 저금해놓은 돈도 있고, 아이들은 이제 어느덧 성장해서 당신 곁을 떠난 상태일 것이다. 이제 좀더 작은 집으로 옮길수도 있을 테고, 시간과 그간 얻은 지혜를 전부 당신 일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시기 이외에 창업하는 것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은 선택이다."

"There are two good times to start a company. The first is when you’re young and have no family, you live off your family at home, and you can basically work twenty hours a day because you’re nineteen.  That’s a great time to start a company.  The second is when you’ve finished the corporate career path, you’ve got money in the bank, and your kids are grown and gone.  You can downsize your property and afford to basically give all your time and wisdom to a company.  Everything in between is a nightmare.”

바로 정확히 그 선택을 한 사람으로써, 이게 정말 악몽과도 같은 선택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입장에서, 특히나 아직 자녀들이 한창 어린 상태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아빠와 남편을 묵묵히 지원해주는 우리 가족들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 아직까지 나는 악몽같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와이프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확신은 없다. :)

스타트업은 - 아니 적어도, 어쩌면 더 정확히 말하면, 스타트업 문화는 - 라면만 먹고도 며칠밤을 너끈히 새고, 그러면서도 파티와 네트워킹도 좋아하고 즐기는, 20대 초반의 남자들 문화(bro culture)에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스타트업 세계에는 남녀차별, 인종차별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세대차별도 알게모르게 존재한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미국에서도 하이텍 회사의 창업자들의 평균 나이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만39세라고 한다. 또한 하이텍 회사에서 50대 이상의 임원(내지는 창업자)이 29세 이하보다 두배 더 많다고 한다. 나는 사실 이쪽에 더 동의한다. 프로야구 선수도 50대까지 하는 선수가 있고, NFL 쿼터백도 40대 중반까지 하는 선수도 있는 마당에, 엄연한 사무직인 스타트업에서 나이가 대수랴. 나 스스로에 대한 위안때문만은 아니다. 조금 이룬것 있다고 아주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놀생각만 하는 사람들 보면 좀 그럴때가 있다. 공 찰수 있을때 현역에서 더 많이 뛰어줬으면 좋겠다.

관련해서,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적으로 대학생 인큐베이터 말고도 삼성/NHN등 대기업 경험을 갖춘, 나이가 좀더 있는 분들에 대한 창업지원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이유 - 문화차이, 교육환경 차이 등 - 으로 인해,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미국 대학생들을 직접 비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미국 대학생들의 창업문화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충분히 있을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미국에선 대학교 나오자마다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대학교 나와서 번듯한 직장부터 잡으려고 한다, 따라서 대학생 창업문화를 더 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한다. 맞는 부분도 당연히 있고 나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던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도 분명히 있을 수 있고, 따라서 그런 면에서 무조건적으로 비판적 관점만 가지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수 있다고 본다.

고등학교때까지 십수년동안 입시지옥에 살아남기 위해서 집에서 뒷바라지한 것을 생각하면, 일단 부모님이 원하는 번듯한 회사에서의 커리어를 몇년간 살면서 ROI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드리고, 자신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사회 특유의 소위 "간판"에 대한 사회적 압박도 마치 압력솥에서 김을 조금만 빼주듯이 살짝 누그러뜨려 주면서, 동시에 사회생활과 창업을 준비하기 위한 경험도 월급 받아가면서 쌓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몇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큰 조직의 답답함을 느끼고 이제 그동안 꿈꾸어왔던 창업의 길을 조심스레 걸어가고자 하는 팀에게 자본과 멘토링 등 창업지원을 "그들의 환경에 맞게" 해주는 것이 더 한국적 상황에서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Y 컴비네이터가 아니라 ex-대기업 컴비네이터라고 할까? :) 분명 그러한 그룹들에게 필요한 정보나 그들에게 줄수있는 조언은 대학생 창업팀에게 해줄수 있는 조언과는 다를 것이다.

창업에 맞는 나이 이야기 하다가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다. 결론적으로 - 나이먹고 나서 하는 창업은, 물론 당연히 여러가지 어려움은 있을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리콘 밸리 창업 생태계 지표

오랜 친구 벤자민이 최근 테크크런치에 글을 하나 기고했다. 실리콘 밸리와 아시아 다른 지역들을 비교하면서, 무엇이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를 강력하게 만드는지를 분석한 글이다. 

창업을 위한 생태계를 만드는데 필요한 요소를 아래 여섯개로 정의하고, 이 여섯 가지 항목에 대해서 실리콘밸리와 아시아 국가들 (한중일/싱가폴)에 각각 점수를 매기는 방법으로 분석을 하고 있다.  

Market (시장)
Capital (자본) 
People (인력)
Culture (문화) 
Infrastructure (인프라) 
Regulations (규제)

이와 같은 비교를 해봤을 때 실리콘밸리와 비교해서 한국은 특히 시장 크기와 자본, 그리고 창업 문화의 측면에서 뒤쳐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물론 실리콘밸리와 한국을 직접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겠지만, 스타트업 생태계를 더 잘 조성하기 위해서 어떤 항목들이 갖추어 져야 할지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듯하다. 원문 참고





아큐라 인테그라 1994

주말이니까 가벼운 포스팅 하나. 요새 "응답하라 1997"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이라고 하던데, 가끔 삐삐같은 추억의 물건들이 등장하는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근데 추억의 물건이 여전히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 특히 이곳 캘리포니아는 기후가 그다지 극단적이지 않아서 일이십년전 자동차들도 꽤 좋은 상태로 돌아다니곤 한다.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들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때로 영화와 자동차가 그렇다. 둘다 구체적인 연도와 매칭되어 있고, 관련된 사람들의 스토리가 존재한다. 가끔 CGV 사이트에 들어가서 과거 예매 목록을 보면서 "이 영화는 OO랑 XX랑 봤었는데... 그리고 끝나고 이거 먹으러 갔었고. 그게 벌써 이렇게 됐나?" 이런 추억을 떠올릴 때가 있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물건인 자동차 중에서, 오늘 소개하고 싶은건 아큐라 인테그라 1994년형이다. 일본은 지금도 물론 차를 잘 만들지만 90년대 초반의 일본차들은 지금 봐도 경이로울 정도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당시 미국인들은 일본차의 단차 없는 실내조립에 도대체 계기판에 동전을 꽂아둘 데가 없다고 불평할 정도였고, 디자인 역시 일본차가 세계 흐름을 주도할 정도였다. 90년대 초에는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세계를 점령할 기세로 무섭게 올라가는 흐름의 정점에 있었다. 포브스지의 세계 최대 부자가 일본사람이었고, 미국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일본 관련된 (자못 경계심 어린) 책들이 있었다. 물론 그 뒤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되지만.

미국이란 나라에 처음 와본게 1993년. 당시 코넬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형과 함께 살면서, 여름방학때 코넬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랑 동갑내기 친구를 하나 만나게 되었다. 이 친구는 나랑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그당시 벌써 코넬을 졸업하고 펜실베니아 의대로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천재 기질이 있어서 학교도 일찍 들어간데다 공부가 특히 어렵다는 코넬에 다니면서도 월반 비슷한 걸 한 모양이었다. 4개국어 하는것도 모잘라서 틈틈히 자기가 알바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새차마저 자기 힘으로 산, 같이 있으면 아주 비교되고 따라서 나 자신에 대한 짜증을 유발시키는 친구였다.

그때 그 친구가 여름에 산 차가 그때 막 등장한 아큐라 인테그라 1994년형이었다. (94년형은 93년 여름부터 판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보니 대략 이렇다.






저 차가 20년전에 처음 개발된 차라는 것이 믿어지는가. 지금 봐도 디자인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차체 디자인은 비례가 적절하고, 내부 디자인 역시 시대를 한참 앞선 디자인이었다고 본다. 저 모델 자동차는 지금도 캘리포니아에서 꽤 굴러다닌다.

비교를 위해서 미국차중 하나인 chrysler Lebaron 이라는 모델은 1994년형이 이렇게 생겼었다. (놀랍게도 이 모델 역시 1994년에 처음 데뷔한 모델이라고 한다.) 뭔가 미국 영화 추격씬에서 무기력하게 찌그러지는 차로 자주 등장하던 디자인.



친구랑 나는 저 차를 타고 이타카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길거리 다닐때 마치 여자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스무살 갓된 남자들만 할수 있는 치기어린 착각을 하면서.

나에게 93년 여름은 그렇게 진한 추억을 남기고 지나갔다. 아름다운 코넬 캠퍼스, 처음 가본 미국이라는 나라의 생소하지만 강렬한 매력, 같이 어학연수 갔던 팀들과의 재미있는 기억들, 난생 처음 외국인들과 밤새 해본 파티. 나보다 인생의 발걸음에서 앞서 있었던 친구를 보며 나도 그친구처럼 빨리, 더 많은걸 이루고 싶다는 스무살짜리의 꿈...  이런 키워드들이 버무려져서 아련한 기억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나의 아메리칸 드림은 바로 그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이 모든게 지금도 심심치 않게 굴러다니는 아큐라 인테그라 1994년형을 볼때 가끔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이다.  그랬던 93년 여름이 벌써, 눈 깜박할 사이에 20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으니, 세월이란건 정말 쏜살같이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