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소프트웨어 개발자?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33년간의 생애중 마지막 3년의 이야기고, 처음 30년동안의 삶은 목수의 삶이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의 노동을 직접 체험하면서 아마 "만드는 사람", "쟁이"들만이 느끼는 희열(몰입지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뭔가를 만들때의 희열과 영적인 신앙은 둘다 순수한 것이고 일부 맞닿아있는 부분마저 있다고 본다. 만일 절대자가 원래부터 존재했고 그런 존재가 이 세상을 진리와 질서와 자연 법칙 -- 우리가 "물리학"이란 이름으로 극히 일부를 이해하고 있는 -- 으로 만들어서 그것이 실제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다면, 마치 run 명령어를 넣고 컴파일이 완성되고 제대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것처럼 얼마나 기뻤을까. "보기에 좋았더라", 라는 이야기가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일까? 드넓은 진리의 바다 앞에서 조개를 줍고있는 나라는 무지몽매한 인간으로써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생각들이다.

엉뚱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목수? 그걸 요즘으로 치자면... 혹시 소프트웨어 개발자였을까? 뭔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심지어 SI 업체의 용어들은 건축쪽에서 온것도 많다 (물론 이게 반드시 좋은 의미만은 아님). 아마 "모든 일을 주께 하듯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마 목수 중에서도 가장 성실한 목수였을 것이다. 혹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면 가장 성실한 개발자였을 수도 있고. 암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기본 자세는 남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기전에 자기 자신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이어야 할듯.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고 닮아간다는 것은, 분명 후반부 3년뿐 아니라 전반부 30년의 "목수의 삶"에도 해당되는 얘기리라.

오픈웹 아시아 2012

오픈웹 아시아라는 컨퍼런스를 처음 시작했던게 2008년도 가을이니 벌써 4년 전이다. 당시 웹 2.0 아시아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때 많이 받았던 질문중 하나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웹/IT 컨퍼런스중에 대표적인게 있으면 참여하고 싶은데 어디에 참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고, 아무리 둘러봐도 한중일을 대표할 수 있는, 영어로 열리는 "범 아시아 IT 컨퍼런스"가 없다고 생각되서, 그런 컨퍼런스를 하나 만들자고 뜻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었다. 서울에서 열렸던 첫번째 행사는 사람도 장소가 꽉차게 모이고 스피커들의 수준도 높았던 등,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면 아마 지금쯤 더 큰 규모로 오픈웹 아시아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을 테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서울에서는 계속 열리지 못했다. 2009년에 모 정부 기관에서 스폰서십을 약속했다가 갑자기 돌연 취소하는 바람에 행사 자체가 무산되었던 것도 있고, 나도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하고 2010년에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이래저래 서울에서 오픈웹 아시아는 그 이후에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오픈웹 아시아라는 브랜드 자체는 계속 살아남아서, 해외에 있는 친구들이 계속 그 이름으로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2010년에는 말레이지아에서 서남아시아 버전 오픈웹 아시아가 열렸고, 올해 2012년에는 중국 해남에서 "오픈웹아시아 2012"가 개최될 예정이다. 두번 모두 잘 아는 친구들이 추진한데다 2008년도에 컨퍼런스를 처음 시작한 입장인지라, 비록 더이상 중심에 서서 추진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힘 닿는대로 도와주었다. 특히 이번 오픈웹 아시아 2012에 한국 스타트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몇개 한국 스타트업들을 추천했고, 각 나라 패널들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1차로 비트윈, 모글루, Shakr 세개의 한국 회사가 탑10 스타트업에 선정되어서 중국에 가게 되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또한 2010년 말레이지아에 이어 이번에도 스피커로 초대를 받았지만 여러가지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서 이 행사때문에 중국까지 갈 여력은 안될 듯하여 정현욱 대표를 스피커로 소개시켜 드렸다. 이 외에도 몇분의 스피커를 더 섭외중이다. 이렇게 훌륭한 한국분들이 참여하는 오픈웹 아시아 2012에 대한 정보는 이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각.


엊그제 미팅이 있어서 버클리에 갔다가 오랜만에 30분동안 차를 세워놓고 학교 캠퍼스를 걸었다. 비가 오고 낙엽이 떨어진 뒤의 대학 캠퍼스만큼 차분하고 낭만적인 곳이 또 있을까.

그 30분동안만큼은 일상을 벗어나서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바삐 오가는 학생들을 보며 내 대학시절이 생각나기도 했고, 대학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 예가 많은데 그러면 도시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역할 - 대학과 도시의 상호작용 - 은 뭘까, 뭐 이런 아주아주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가기도 했고. 지금 하는 일 관련해서 새로운 생각들과 아이디어가 스쳐가기도 했고... 이런저런 프로세스에 치여 살다보니, 멍하니 걸으며 생각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게 얼마만이었던가.

대학 시절, 생각할 거리가 하도 많아서 머릿속에 한짐 짊어지고 "생각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근데 생각 여행을 떠나도 정작 생각이 별로 안되더라. 생각이란건 어쩌면 내가 잡는게 아니라 나를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불쑥불쑥 나를 찾아오는 생각과 아이디어들을 놓치지 않는 "성실한 영민함"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모든걸 다 짊어지고 떠나는 생각 여행도 좋을지 모르지만, 하루에 30분이라도 운동이든 산책이든 머리를 비우고 "생각이 나를 찾아올수" 있는데 도움되는 환경을 만드는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팀에 있으면 이기는 사람


농구나 축구를 하다 보면 크게 화려한 플레이를 하지도 않지만 그가 팀에 있으면 꼭 경기에 이기게 되는 사람이 있다. 이는 비단 동네 리그가 아니라 프로리그에서도 해당하는 이야기. 이 기사를 보고 난 다음, NBA의 셰인 베티에를 완전히 다른 앵글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농구팬이 아니더라도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글. 야구에서도 머니볼이라는 영화가 이런 비슷한 주제를 다룬바 있다.

조직에서도 함께 일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있다. 다른사람 하는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거나 자기 일을 포장해서 부풀리기 전에 일단 자기 일부터 누가 보든 보지않든 말끔히 해내는 사람. 이를테면 개발을 할때도 혹시나 있을 소위 "빵꾸"에 대비해서 확실히 맺음을 해놓아서 결국 큰 사고없이 지나가게끔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화려하게 티가 안 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사고없이 조용히 지나가는게 얼마나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있을 때 조직에는 신뢰가 형성된다. 그 일은 OOO가 하는 거고 따라서 그건 믿을수가 있다, 이런 신뢰. 이런 사람들로 구성원이 채워지고, 나아가 사람들 간에 이러한 신뢰와 성과의 측면에서 소리없이 경쟁마저 일어날때, 조직의 전체적인 경쟁력이 향상된다.

반면 이메일 보내놨지만 꼭 한번더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 사람들, 중간에 점검을 안 하면 꼭 한두가지 놓치는 포인트가 발생하는 사람들이 조직에 한두명이라도 있으면 그게 전체적인 생산성을 얼마나 다운시키는지 모른다. 정작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문제가 별것 아니고 그럴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무얼 모르는지 모르고, 상자 바깥에 나와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동안 상자 안에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존재다. 그래서 (상자를 깨고 나오려는 부단한 노력을 스스로 기울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사람의 역량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고 그걸 교육으로 바꾼다는 건 힘들다. 조직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을 교육시키기보다는 같이 가는 여정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더 코스트가 적게 드는 것. Fire fast 해야 한다.

티가 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팀에 있으면 꼭 경기를 이기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들로 팀을 채워야 한다. 어쩌면 셰인 베티에같은 선수를 알아볼 수 있는 역량이 리더의 가장 큰 역량일지도 모른다.

몰입지점


창업에 관심이 있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후배들에게 종종 받는 질문중 하나는, 회사를 다녀야 하는지 벤처를 막바로 창업해야 하는지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어쩌면 앞뒤가 바뀐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질문은 내가 좋아하고 정말 몰입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과연 있다면 어디에 존재하는지 일것이다.

보디빌딩하는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되는 것은 “몰입지점 (getting in the zone)” 이다. 한시간 내지는 두시간동안 훈련하는 도중, 정말 다른 생각 안하고 운동에만 완전히 빠져들어서 몰입지경이 되어 운동할때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할수 있다는 것.

우리 모두는 이러한 “몰입상태”를 경험할 때가 있다. 내 경우 어떤 것을 “만들때” 그런 상태에 들어가는 것 같다. 이를테면 컴퓨터 조립을 한다든지, 조립식 장난감을 만든다든지, 아니면 홈페이지 스킨을 매만진다든지 할때 등.

우리의 직업적인 일에서도,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할때 정말 내 자신을 잊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몰입하고 빠져들어서 할수 있는지를 알아보는게 먼저일 것이다.

살면서 그런 프로젝트를 발견하는 것만큼의 행운은 없다. 비단 결과물 뿐 아니라, 과정 가운데에서 몰입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직장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타들어가다 만 젖은 장작처럼 완전히 몰입해서 일하지 못한다.

만일 그런 프로젝트의 기회가 대기업에 있다면 대기업을 다닐 수도 있는 것이고, 기존에 존재하는 기업이 그런 기회를 주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창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다시피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하는일이 과연 맞는 일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을때, 5일 연속으로 부정적인 대답이 나온다면 과감히 지금 하는 일을 접어야 한다.)

구글에 다니면서 구글+ 프로젝트의 초창기를 경험해 보니,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몰입해서" 스타트업처럼 일할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경험 이후로,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넓어진 것 같다. 스타트업이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신나게 몰입해서 일할수 있는 프로젝트의 존재 자체를 일컫는 단어일 뿐이다. 그리고 일터에서 믿을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의 직업적 여정은 결국 그런 몰입상태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어야 한다.

실리콘밸리 언론소개 팁 공유

지난주에 우리 서비스인 타파스틱이 테크크런치, 판도데일리, 더넥스트웹 등 여러곳의 실리콘밸리 미디어에 소개되었다. 기존에 한국 언론에서 정말 많이 소개해 주신것을 포함해서, 오픈한지 얼마 안되는 서비스로써 운좋게 여러곳에 소개가 된 셈이다. 과정에서 겪었던 몇가지 이야기를 기록차원에서 짧게 공유.

첫번째, PR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따라서 이걸 너무 촉박하게 준비하면 안 된다. 우리같은 경우 국문, 영문 보도자료를 각각의 타겟 D-day보다 거의 한달 전에 작성했다. 기자분들께 최소한 2주전에는 보도자료를 주어야 혹시라도 질문을 받거나 미팅을 잡을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 보도자료를 주고 "이거 내일 나갈 건데요" 이러는건 좋은 인상을 주는 일이 아니다. 

두번째, PR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 자체의 본질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도 이번에 그 경우에 해당하는 거긴 하지만, 어떤 서비스를 "론칭했다" 라고 알리는 것은 그닥 큰 임팩트가 없다. 소위 "론치 포스트" 보다는 "모멘텀 포스트"가 훨씬 파급력이 있다는 것.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 하루에만도 수십개씩 테크크런치에 쏟아지는 새로운 서비스 출시에 대한 포스트를 얼마나 눈여겨 보는가? 반면, 어떤 서비스가 1억명 유저를 달성했다, 이런 포스트가 훨씬 더 파급 효과가 있다. 따라서 론치 PR에 "너무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물론 새 서비스 출시에 대해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다는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 이상의 의미를 두고 시간을 너무나 뺏길 필요는 없다고 보고 빨리 move on 해서 서비스 자체의 본질에 시간을 쏟는게 더 나은 일이라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에서 PR을 처음 해보는지라 처음에는 다소 막막했다. 그렇다고 PR 전문회사를 쓰자니 가격이 너무 비싸고.. 따라서 하는수없이 일단 내가 드래프트를 작성하고 우리 회사에 투자한 SK 플래닛 분들과 함께 공동 PR 형식으로 그분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것도 다짜고짜로 해달라 라고 하는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닌것 같아서, 내가 구글링을 통해 기존 사례를 찾아내서 우리도 이러한 형식으로 할수 있는지를 물어보았고 거기서부터 대화가 진전되었던것 같다. 

그리고 나서는 몇가지 매체들을 소개받기로 하고 여기저기 소개를 요청했다. 처음에 누구에게 소개를 요청하고, 그 사람이 누구를 소개시켜 주면 또 연락하고, 그러면 또 누구를 소개를 받고... 모든게 그렇지만 소개라는게 이런 지루한 과정인것 같다. 연락을 했지만 당연히 모든 곳에서 응답이 온 것은 아니었다. 경험한 바에 따르면 내가 누구냐 라는것보다는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 누구냐인 것에 따라서 소개 성공율이 결정되는 듯. 거기다 한가지 작은걸 보태자면 "ex Google PM"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 아마 내 이메일이 곧바로 trash로 들어가지 않는데 보탬이 되었던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몇군데 매체를 소개받고 인터뷰 예약을 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블로그 포스트였다. 보도자료는 사실 딱딱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내가 보더라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 부가적인 재료로 쓰일 수 있도록 "강남 스타일"이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포스트를 하나 작성했고, 이 블로그 포스트를 보도자료와 함께 공유했다. 결과는 대성공. 우리를 다룬 거의 모든 포스트가 내가 썼던 블로그 포스트를 참조했다. 보도자료와 함께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좀더 캐주얼하게 블로그 포스트 형태로 같이 공유하는 것도 꽤 좋은 전략이라고 본다. 

포스트가 나가고 나서는 가볍게 글을 실어준 기자들에게 thank you note를 작성했다. 다들 바쁜 사람들이니 정말 딱 한줄짜리였다. 좋은글 써줘서 고맙고, 앞으로 우리쪽에서 재미있는 일 있으면 계속 업데이트 해주겠다, 이런 내용. 

덧. 한가지 실수가 있었는데, 보도자료를 내보내는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모 언론의 모 리포터는 자기들이 아침 일찍 내보내려고 했는데 다른 매체에서 그보다 훨씬 더 내보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날짜뿐 아니라 시간도 대략 정해주어야 한다는 교훈. 

남자와 여자의 차이


요새 홍보, 미디어쪽 관계되신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데, 이쪽 분야에서는 여자분들의 비중이 높은것 같다. 이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도 그런것 같다. 왜 그럴까?

내 생각이지만 여자들은 남의 말을 듣고 거기에 반응해서 이야기하는 훈련이 남자들보다 더 잘 되어 있는것 같다. 반면 남자들은 남의 말을 듣는 도중에도 내내 자기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남자들 둘의 대화는 종종 얼굴만 마주봤지 서로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남자 둘이 말하고, 가운데 여자 한명이 있어서, 나중에 끝나고 여자분이 이야기를 정리해 주고 관계를 스무스 하게 만들어 주면 큰 도움이 된다. 반면 여자 둘이 막 수다떠는 가운데에 남자가 한명 끼어 있으면 그것만큼 어색한 게 없다.

한편 여자들은 남의 말을 듣다못해 너무 상대방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하고 자세한 부분에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는것 같다. (우리 와이프에게 하는 얘기 아님.) 도대체 상대가 왜 저 시점에서 저런 말을 했을까를 혼자서 계속 생각하는 경우. 실은 말이라는게 잘못 나오거나 별 생각없이 나올수도 있는거고, 따라서 상대는 아무생각 없이 한 말일수도 있는데 본인은 계속 그걸 생각하는 것.

여자들이여, 남의 말때문에 생각좀 너무 많이 하지 마시길.

남자들이여, 제발 생각좀 하고 말하시길.

(참고로 우리 타파스틱에도 남녀 차이에 대한 웹툰 시리즈가 하나 게재중임.)

실패

지난 주말, TIDE 에서 주최한 제2회 스타트업 스프링보드 행사에서 스피킹 요청을 받았다. 벤처 행사에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할때 기대하는 것은 아마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하기, 창업의 성공 키워드, 이런 것들일테다. 근데 참가자들이 저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성공의 방정식을 계속해서 듣는것도 나름 주말에 공부하는 것마냥 고역이겠다 싶었다. 다행히 나는 성공의 스토리를 나눌게 없어서, 반대로 실패의 경험을 나누기로 했다. 나름 솔직하게 7가지 실패의 스토리를 나누었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개.

실패 스토리를 나누기 위해서 내 인생의 실패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근데 돌이켜 봐도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턴 아주 크게 소위 '개망신 수준'으로 실패한 예가 별로 없는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에 오기전에 비해서 이 세상을 아주 크게, 좋은 방향으로, 비가역적으로 바꾼 성공의 스토리 또한 없다 (방금 내가 말한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이기도 하다). 아이러닉하게도, 그게 바로 내 인생의 가장 큰 실패의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인생 살면서 큰 스케일의 일을 무모하게 시도한 경험 자체가 없었던 거다. 우리의 가장 큰 실패는, 어쩌면 크고 멋들어진 실패의 스토리가 없는 그 자체일수도 있다. 인생을 맹숭맹숭하게 살아왔다는 이야기일수도 있으므로.

미국의 어떤 성공한 이에게 인생의 교훈을 물었다. 그녀는 그렇게 얘기했다. 학생 시절, 학교에 다녀와서 저녁 식탁에서 아버지가 늘 물었다고 한다. "넌 오늘 어떤 실패를 했니?" 그래서 그날 학교에서 실패했던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버지는 그자리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그 실패가 바로 너의 땅을 더 단단히 해 줄거야, 넌 아직 젊어, 그러니 더 실패해 봐, 이런 의미였으리라.

고백컨대 나는 아버지로써 우리 자녀들의 실패를 이렇게 축하해줄수 있는 용기가 아직은 없다. 정신 바짝 안차리면 한순간에 뒤쳐지는게 세상이고, 따라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라고 은연중에 보챌것 같다. 작은 부자는 사람이 내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처럼, 작은 인재는 반에서 공부 1등해서 나오지만 정말 큰 인재는 그렇게 자잘한 것으로부터 나오는게 아닐것 같다. 그렇게 알면서도 실제로 우리 아이들의 실수를 축하해줄 수 있는 대인배 아빠가 되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아 보인다.

Along the Way

지난 7월, 존경하던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큰 나무일수록 그늘이 크게 드리운다고, 한국에서도 그를 기리는 분들의 애도사를 많이 볼수 있었고 (참고로 재미 교포로써 한국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셨음), 8월에 Livermore에서 열렸던 추모예배에는 그가 크고 작게 영향을 주었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의 삶을 추억했다. 미국의 장례식은 우리처럼 목놓아 소리높여 우는 장면은 없지만, 누구 하나 남 눈치보고 억지로 온 사람도 없고, 모두 그 시간만큼은 엄숙하고도 온연히 가신 분만을 추억하는 것 같다.

비교적 지척에 살면서도 뭐가 그리 바빠서 그의 생전에 좀더 자주 찾아뵙질 못했었는지. 그런 나의 후회와 자책은, 마치 아래에 소개할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썼던 글에 나오는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병으로 인해 생의 끝자락이 손에 잡힐듯 다가온 어느날, 사모님과 두분이서 훌쩍 샌프란시스코로 데이트를 떠난다. 그때 느끼길, 그동안 뭐가 그리 바빠서 베이 지역에서 수십년을 살았면서도 샌프란시스코를 황급히 찍다시피 다니기만 했지, 그 도시를 제대로 여유있게 감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지, 이런 상념이 들더란다.

삶에서 꿈과 목표를 이루어 가는것만큼 숭고하고 아름다운 과정이 없지만, 그건 바쁨 없이는 불가능한 거고, 그런 바쁨때문에 놓칠수밖에 없는 것도 분명히 너무 많다. 여기에 대해서는 "바빠도 중요한 것은 놓치지 말고 살자" 따위의 뻔한 말밖에는 과연 해답이 없는걸까.. 시한부 선고 등의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삶의 속도를 '뜀'에서 '걸음'으로 늦추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다 한번 돌아볼수 있는 그러한 시간이 과연 우리에겐 어떻게 하면 주어질수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그는 결국 7월에 하늘나라에 가셨고, 대신 책을 하나 남겼다. 책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짧아서 기껏해야 소책자 분량인데, 그 이유는 챕터만 잡아놓고 완성을 채 못하고 가셨기 때문이다. 마치지 못한 챕터의 흔적조차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서, 마치 터만 잡혀있고 완성되지 못한 집처럼 더 생생한 안타까움을 준다.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삶의 자전축을 조금은 기울일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다. 단식을 하면 몸이 리셋되듯이, 이 글을 읽고 난뒤 한 1주일간은 정말이지 생각과 우선순위가 리셋상태로 머물러 있었던것 같다. 물론 글쓴이가 내가 너무나 잘 알던 지인이어서 이야기들이 더 생생히 하나하나 박혀들어왔을 수도 있겠다.

참고로 말하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 신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간중간 일반적인 이야기들도 더러 나오지만, 실은 이 책은 "기독교 신앙 서적"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 없는 분은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굳이 읽지 않으셔도 된다. 단 여기에 대해서 필자는 아예 서론에서 "If you don't [already know the Lord], go seek Him immediately; you don't know what incredible gift you're missing." 이라고 썼다. 믿음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이 받았던 축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참고로 이분은 내가 지금까지 알던 분중 가장 최고의 엘리트고 석학중 한 분이고, 확실한 자기 경험없이 기존에 존재하는 문화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분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분의 신앙적 체험의 고백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더욱더 파워풀하게 다가온다.

책은 영어로 되어 있다. 시간이 있었으면 번역을 했었을 거다. 아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컨텐츠가 전달될 수 있도록, 언젠가 시간을 내서 번역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원문부터 나눈다. 가을 낙엽이 뒹굴면서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그래서 삶이 더 아름다울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요즘, 가신 그분을 다시한번 추억해 본다.




미국의 재정파탄 시나리오

기술 섹터의 연도별 전망으로 유명한 Mary Meeker가 이번엔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리포트를 작성했다. 내용은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망한다는 둠스데이 시나리오. 우선 이 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고 분석했는지 신기할 따름. (1776년부터 1930년까지 미국 연방정부 재정지출 데이터가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모양.) 알바생들이 고생좀 했을듯.

리포트에서 계속 강조하는 포인트가 미국의 재정적자는 대부분 늘어난 보장성 사회복지 비용에서 온다는 점인데, 여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있는지는 의문. 일본의 예에서도 보듯 사회 자체가 선진국형/고령화로 진입할수록 저성장 고비용 사회로 진입하고 정부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수 없을텐데. 따라서 사회복지 비용의 (무조건적 삭감이 아닌) 효율화 및 저성장/고연령 사회에 맞는 근본적 산업구조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이는 한국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