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또는 20 million?

누군가 질문을 했다. “만일 20세로 돌아갈 수 있거나 $20 million을 벌수 있다면 어떤걸 택하겠는가?” 나는 주저하지 않고 20 million을 택했다. 돈이 없어서기도 하지만^^ 굳이 20세로 돌아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기도 했다.

나의 20대, 그것도 초반을 생각해보면, 그림으로 치자면 마치 크레용을 잡은 손의 힘조절이 안되서 삐죽삐죽 온갖 모서리가 튀어나와있는 아이의 그림,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책 하나를 읽을때도 세상의 모든 생각을 나혼자 하는 사람처럼 상념에 사로잡히기 일쑤였고, 심지어 다음 문장을 만나기 두려울 때도 있었다.

반면 뒤돌아 생각하니 나의 30대 초반은 너무 좋은 시기였던것 같다. 좀더 여유로왔고, 모서리가 다듬어졌고, 일도 열심히 했지만 놀기도 열심히 헀었다. 어느정도 기름칠이 되고 손에 익은 연장, 무릎이 어느정도 나왔지만 내 몸에 더 편하게 맞는 청바지같은 느낌. 만일 지금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20대보다는 30대 초반으로 돌아가는걸 선택할 것이다.

해마다 마찬가지지만, 올해도 이맘때가 되니 20대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30대를 두려워하는 페친들의 포스팅이 이어진다. 걱정 마시라. 더 여유롭고 더 재미있는 30대가 펼쳐질 테니. 아니 더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는, 나중에 돌이켜봤을때 추억하게 될 바로 지금인 거다.

책읽기 캠페인

요새 책을 읽는다. 시간은 도무지 없지만, gym에서 자전거 타면서 읽기도 하고, 가끔 Caltrain 기차탈때 읽기도 하고, 저녁에 잠깐씩 읽기도 한다. 물론 시간이 없다보니 진도가 빨리 나가진 않고. 그러다 보니 모든 내용을 표지부터 표지까지 다 읽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페이스북과 데일리 뉴스에 눈을 맞추고 있는건 마치 빠르게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쌍안경을 끼고 바로 앞에 지나가는 풍경을 보는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어찌 이리도 빨리 변하는지. 그래서 책을 보려고 노력한다. 또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모든 정보를 두루 꿰고 있는데도 깊이가 얕은 사람도 있고, 반면 드러내지 않아도 깊이있는 사람의 경우 책 많이 읽고 경험 많이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더라.

그렇다고 뭐 거창한 책을 본다기보다 요새는 주로 기업, 기업가들을 다룬 책들을 본다. 트위터,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의 처음 모습을 보면서, 그들도 필연적으로 마주쳤을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에서 기업가로써, 리더로써 어떤 인성과 자세를 유지했는지, 이런걸 주로 배우려고 노력한다.

책은 주로 Kindle로 보고, 일부러 눈에 부담없는 e-ink 버전의 Kindle 엔트리 버전으로 본다. 그리고 온라인에서도 볼만한데 길이가 긴 글이 있으면 Klip.me의 Send to Kindle 크롬 익스텐션을 활용해서 킨들로 보내놓고 나중에 읽는다.

2014년은 책과 함께! 

우리네 책들

멋진 글을 하나 보니, 아울러 떠오르는 생각.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이 글에서는 기독교적 내용은 배제하고 철학적인 내용만 포함..)

우리가 만일 아무것도 없는 암흑에서 와서, 아무것도 없는 암흑으로 돌아간다면, 생각해보면 인생만큼 허무한게 또 있는가? 니체의 허무주의도 이 문제에 대한 누구보다 깊은 사유에서 나온것 아닌가? 만일 우주 빅뱅의 대척점이 모든것, 심지어 정보마저도 소멸하는 블랙홀이라면, 인생에 의미를 굳이 부여하려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행위일수 있지 않는가? 굳이 그렇게 매크로한 스케일이 아니더라도, 수천년전 국경을 지키기 위한 이유만으로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갔던 군사들이 있었지만, 만일 그 국경이 지금 와서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면 그들의 죽음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인가?

얼마전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을 책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책에는 시작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가 있다. 책에게는, 그게 다다. “책의 입장”에서 보면 첫표지와 끝표시 바깥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책은 굳이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책이 집중하는건 책 안에서 펼쳐지는 자신의 스토리일 뿐이다.

어떤이의 인생이 길고 어떤이의 인생은 짧듯, 책도 그 길이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책은 단 몇장에 불과하지만 그 어떤 책보다 아름다운 스토리를 담고 있다. 어떤 책은 처음에는 완만하고 지리하게 스토리가 이어지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엄청난 불꽃이 점화되는 것처럼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리고 그런 스토리의 주인공은 심지어 책이 마지막 페이지로 치닫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네 “책들”이 신경써야 하는것은 오직 첫표지와 마지막 표지 사이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스토리일 뿐이다. 인생은 어차피 놓고갈 것들 하나라도 움켜지는 소유가 아니라, 경험과 스토리다. 설령 책이 없어지더라도, 책 안에 있었던 스토리는 남을수 있는 거니까. 

실리콘밸리의 코리안 해적들

인도계인 Satya Nadella라는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유력한 CEO 후보중 하나로써 꼽히는 걸 보고 드는 생각 하나. 만일 한국인들이 실리콘밸리나 미국 주류사회에서 어느정도 레벨 이상을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피부색 하나뿐이라면, 인도인들 중에서 -- 그것도 2세가 아닌 이민 1세대들이 -- 미국 주류사회에서 CEO를 차지하거나 주요기업의 CEO 후보로 종종 거론되는 경우를 보는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것. 단순히 피부 단위면적당 색소의 밀도만 놓고본다면 그들이 우리보다도 높을텐데.


지나친 일반화의 위험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실리콘밸리 IT 대기업들에서 갖고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실력도 좋은데다가 큰 불평없이 묵묵히 열심히 일해주는 착한 사람들”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인도인들은 자기손해는 절대로 안보고 무슨 일만 있으면 눈 동그랗게 뜨고 달려드는 사람들로 인지되어서 인도인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경우도 많음. 하지만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주요기업의 CEO를 차지하고 있거나 후보로 거론되는 사례중에는 인도인의 숫자가 한국인보다 훨씬 많다는 것. (단순 인구차이? 미국에 나와있는 인구로 비교하면 한국인 숫자도 만만치 않음) “실력도 좋은데다 열심히 일해주는 착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가만 생각해보면 억울한 일.


실리콘밸리에서 IT 업종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석박사 과정을 미국에서 마치고 현지에서 취업을 한 경우가 보통인데, 이런 경우 대부분 회사에서 비자 스폰서나 영주권 스폰서를 해주기 때문에 몇년간 나오기가 어렵고, 나올때쯤 되면 가족도 생기고 여러가지로 몸이 무거워져 있는 상태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뛰쳐나오기가 어렵게 되는것. 또한 주변의 많은 경우 실리콘밸리에서 경험을 쌓아가면서 아이들을 어느정도 키워놓고 있다보면 한국의 대기업이나 학교에서 러브콜을 받아서 좋은 조건에 중요한 위치로 컴백하는 경우들도 종종 보이다보니, “지금 회사에서의 안정적인 커리어 빌딩”이 중요한 요소로 다가오는게 사실.



안정적인 커리어 빌딩이 나쁜건 전혀 아니고 나도 때로는 창업의 길이 아니라 좀더 안정적인 길을 유지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안하는 것 아니지만, 그냥 개인적 바램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는 한국분들도 더 많이 늘어나서, 한국인 하면 “해군”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해적”의 이미지도 조금은 더 많아졌으면 하는 아주 단순한 개인적 바램이 있음. (스타트업쪽에서 흔히 말하는 “해적과 해군” 이야기 - ”I’d rather become a pirate than joining Navy”) 다른 이유는 없고, 그래야 나도 한국사람으로써 그 이미지에 좀 묻어갈 수 있을까 해서.^^ 

Unicorn 기업과 MBA 창업가

출처: Seeing both sides

얼마전에 화제가 된 글중의 하나가 VC 투자를 받은 인터넷 회사들 중 시가총액 1조 이상의 기업들 (소위 "Unicorn company") 의 수가 아주 적다는 내용이었는데, 발표 이후 어떤 글에서 이런 Unicorn company들과 MBA 졸업생과의 관계를 조사.
  • Unicorn 기업중 33% (3분의 1) 은 초기 파운더중 적어도 한명이 MBA 출신
  • Unicorn 기업중 82% 는 전직 또는 현직 경영진 멤버중 적어도 한명이 MBA 출신 
  • MBA출신중에서는 하버드, 스탠포드, 와튼 출신이 거의 절반 차지  
MBA 출신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쪽에 기웃거릴 때가 바로 버블의 시작이라는 농담섞인 이야기도 있는데, 비단 그렇지만도 않은듯.





직업적 인간애

요새 모 회사와 같이 프로젝트를 하나 추진하고 있는데, 담당하는 팀에서 -- 물론 과정상의 어려움은 당연히 있지만 -- 우리 회사 사정이 바쁜걸 이해해 주고 최대한 맞추어 주려고 노력을 해주고 계신다. 가만 생각해보면 반드시, 굳이, 꼭 그래야만 하는건 아닐수도 있는데도.

참 신기한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일을 하다보면 상대방이 그냥 내앞에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돌아서서는 실제로는 전혀 딴판으로 “그건 니사정이고..” 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진짜 인간적으로 본인도 우리의 사정을 -- 다는 아닐지언정 어느정도까지는 --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최대한 자기일처럼 뛰어주려고 하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기울여 주는건지, 그런 진심의 유무를 어떤 종류의 물리적 접촉 없이도 상당히 정확한 오차범위 내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이 갖고있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의 비 언어적 시그널 감지능력은 정말 뛰어난 나머지, 때로는 아무런 언어적 시그널이 없든지, 혹은 심지어 언어적 시그널은 실제의 데이터와 반대되는 잡음을 열심히 내더라도, 그걸 관통해서 사람의 본심을 꿰뚫어볼수 있는 능력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꽤 높은 수준으로 관찰되곤 한다.

인간애라는게 아주 거창한거 아닌것 같고, 특히나 직업적인 부분에서의 인간애라는건 설령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나랑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조금더 이해해주고 조금이라도 그사람 입장에서 일해주려고 하는 태도, 그러한 작은 태도의 차이인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들의 단기적 소득은 없거나 매우 적을수 있지만 그러한 작은 “직업적 인간애”가 쌓여갈 때의 장기적 소득(long term dividend)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굉장히 크다.  

Spotify의 함정

북미시장에서 음악 서비스의 판도를 바꿔버린 스트리밍 서비스 Spotify에 대한 분석. 어떤 밴드의 경우 자체적으로 계산해보니 대략 6,000번 정도 스트리밍이 되면 1불정도 수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그럼 100불의 수익이 발생하려면 한곡당 60만번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재생이 발생해야 한다는 이야기.

Spotify가 자체적으로 발표한 것 역시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니고 한번 스트리밍에 $0.006-$0.0084정도가 record label (음반회사)로 가는 것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음반회사도 자기들의 cut을 떼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Spotify를 통해 의미있는 돈을 벌수 있는 컨텐츠 저작자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

반면 소비자에게는 Spotify가 한달에 몇불 수준의 적은 금액만 내고 수백만곡에 달하는 음원을 모두 내것처럼 액세스 할수 있기 때문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서비스인 셈. Spotify는 이러한 consumer benefit을 토대로 회원을 끌어들이고, 거대한 회원 베이스를 레버리지해서 컨텐츠 저작자들을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올 수밖에 없도록 해놓은 서비스라고 보면 되는것.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드는 의문은.. 이게 과연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모델일까 라는점. 인터넷의 힘을 레버리지해서 재빨리 컨수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러한 "채널 장악"을 무기로 컨텐츠 저작자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구조를 만드는 것까지는 좋은데, 위의 예에서 보다시피 컨텐츠 저작자에게는 말도 안되게 돈이 안되는 네트워크인 반면, 컨텐츠는 양질의 컨텐츠일수록 필연적으로 저작 비용이 드는거라서, 여기서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상의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셈.

때문에 참여자들이 해당 플랫폼에서 열심히 돈벌 생각을 하기보다는 해당 채널은 단순 홍보의 채널로 사용하고 실제 돈을 버는 것은 별도의 채널에서 (소위 off-network) 벌려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고 (동일한 현상이 유튜브의 MCN (multi channel network) 에서도 보여지고 있음),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도 장기적으로 리스크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것. 실제로 Spotify나 Pandora등 스트리밍 서비스들 역시 상당히 큰 적자를 기록중. 또한 네트워크나 채널 사업자로 위치를 공고히 한 업체들도 수익 창출을 위해서 다시금 "content is the king"을 기억하면서 오리지널 컨텐츠의 직접 생산쪽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듯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처럼). 아무튼 인터넷 시대의 컨텐츠 사업 비즈니스 모델은 재미있는 주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