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양의 문화 vs. 마음의 여유

얼마전 후배로부터 들은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만일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확신이 별로 안 선다면, 설령 자기가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그걸 조심스럽게 말을 하곤 한다는 것.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포항공대를 나왔다고 치면, 몇몇 낯선 사람도 껴있는 어떤 자리에 갔을때, 포항공대 나왔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대신 그냥 "네 저도 뭐 대학교 나왔구요" 이렇게 말을 한다고. 왜? 혹여라도 그룹 중에서 자신을 "재수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기에.

이 이야기를 20대 젊은이에게 들으니 더욱 놀라게 되더라. 이야기를 듣고 "엥? 뭔소리" 라고 반응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 때가 몇번 있었던 듯. 아니 왜 자기가 나온 학교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지 못할까? 이것은 겸양의 문화라기보단, 바꾸어 생각해보면 상대편의 잘남을 포용할 만한 여유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없다는 것 아닐까?

단일민족인데다가 아파트 문화, 군대 문화 등 천편일률적 문화로 상징되어 왔던 우리의 현대 역사를 볼때, 나보다 잘난 부분이 있는 사람을 용납하기 쉽지 않을것이고, 나역시도 한국 사람이기에 당연히 그럴것이다. 그러나 그 천편일률적 문화를 뒤집어 본다면, 그것은 또한 동시에 그 와중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튀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한국사회는 어떻게 해서든 튀려는 욕구와, 튀는 사람을 재수없게 여기는 문화가 공존하고 늘 갈등한다. 하여간 여러모로 high energy, 다이내믹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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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에서 어떤 연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재X없을 정도로 잘난척 하고 자기 PR을 하는것이, 미국에서는 보통 정도라는 것. 우리, 겸양의 문화도 좋지만 조금씩 더 잘난척들 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누가 잘난 티를 내더라도 그냥 쟤는 저런가보다, 하고 넘길수 있는 마음의 여유들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근데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좀더 잘나져야 한다. 키가 큰 사람은 구태여 발돋움을 할 필요가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