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가 집어삼키는 미래

(기고글)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가이자, 넷스케이프를 창업해서 인터넷 시대를 도래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한 마크 앤드리슨 (Marc Andreessen) 은 2011년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을 통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Software is eating the world)” 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소프트웨어는 현재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파급력은 그동안 기술 자체의 개발에 있어왔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반도체를, 그 이후로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러한 기술 개발은 연구소의 담장을 넘어서, 바깥 세상으로 거침없는 행군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소프트웨어 기술이 수십년, 또는 그 이상 별다른 변화없이 지속되어 온 기존의 산업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자동차 산업은 100년 넘게 내연기관을 중심으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 자동차 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회사는 기존 자동차 회사중 하나가 아닌, 10년 전만 하더라도 존재가 미미했던 실리콘밸리 회사인 테슬라다. 모바일 생태계의 주도권을 일찍부터 잡았던 회사는 한때 한해 4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팔던 핀란드의 공룡 노키아였다. 그러나 현재 모바일 생태계의 주도권은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실리콘밸리의 두 회사, 애플과 구글로 확실히 넘어간 상태다. 또한 헐리웃으로 대변되는 엔터테인먼트 컨텐츠 분야 역시 현재 혁신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회사는 실리콘밸리에 자리한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컨텐츠 플랫폼 구축의 영역을 확실히 장악한 뒤, 이제는 연 3조원 이상을 투자하여 원천 컨텐츠까지 개발하고 있다. 기술 분야의 최강자를 넘어서 이제는 컨텐츠 생산의 최강자까지 되려는 것이다. 필자의 회사 역시 웹소설, 웹툰 형태의 컨텐츠를 모바일에서 유통시키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미국의 전통적인 출판 업계를 개혁시키려 하고 있다.

이러한 회사들의 공통점은 기술의 힘을 바탕으로 기존 산업을 근본부터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등의 산업을 일구어 선진국의 반열에 도달했다. 따라서 실리콘밸리발(發) 혁명이 기존 산업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는 시대엔 기술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의 구분이 없어진다. 모든 산업이 소프트웨어 혁명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고, 따라서 이제는 모든 산업분야가 기술 분야, 또는 소프트웨어 산업이라고 할수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각 산업 분야는 실리콘밸리식 소프트웨어 혁명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는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기존 산업 분야에 적용할수 있는 B2B (Business to Business), SaaS (Software as a Service)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창업기업일수록 초기 고객의 확보가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기존 산업 회사들이 창업기업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도입해 준다면 소프트웨어 창업 생태계 정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혁명이 기존 산업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또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최소한의 정부 규제다. 물론 규제가 아예 없을수는 없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혁명은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는 시장을 좀더 발전시키는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산업에 적용되던 규제를 그대로 갖다 붙이는 것은 여러가지로 맞지 않을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숙박 공유업체인 에어비엔비 (airbnb) 를 보자. 기존 숙박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숙박업이라는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위해선 여러가지 법규와 규제를 거쳐야 하는데, 에어비엔비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기 집의 방 한두개를 빌려주는 사람들은 숙박업 면허를 따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일한 법규와 규제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여행 도중 방을 얻으려는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정식 숙박업 규제를 받는 호텔이나, 에어비엔비를 통해서 빌릴수 있는 누군가의 침실이나, 비슷하게 이용 가능한 옵션이라고 할수 있다.

만일 순수히 규제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에어비엔비의 사업 모델이 싹을 틔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방을 내놓는 주인들에게 모두다 숙박업 법규와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어비엔비에는 최소한의 규제만 적용되었고, 따라서 현재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호텔체인들이 갖고있는 객실수보다 더 많은 방 갯수를 확보한 서비스가 되었다. 에어비엔비는 기존 호텔업을 없앤게 아니라 "자기집 공유" 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었고, 이로 인해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부가가치 창출은 처음부터 규제의 장벽에 막혔더라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정부도 기존 산업을 변화시키려는 소프트웨어 창업 회사들을 대상으로 법규와 규제를 최소화 할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